[사유와 성찰] 스님들의 졸업식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님들이 모여 사는 승가에서도 비구 한 명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온 총림(叢林) 대중의 관심과 자비가 필요하다. 총림이란 전통적으로 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사찰로 승가 대중이 화합을 이루어 사는 곳을 말한다. 출가자 한 명이 독립적인 수행자로 성장하면서 총림 대중을 이끄는 방장 큰스님에서부터 행자, 종무원들, 신도님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응원과 지도를 받게 된다. 때로는 따뜻한 사랑으로, 때로는 따끔한 경책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런 환경 속에서 수행자의 삶을 시작하고 배우면서 한 과정을 마칠 때마다 훌쩍 커버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동안거 해제를 며칠 앞두고 해인사승가대학에서는 스님들의 졸업식이 있었다. 4학년 졸업반 총 일곱 명의 스님이 무사히 교육 과정을 마쳤다. 해가 갈수록 출가자가 감소하니, 승가대학의 학인 스님 수도 감소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새삼 졸업하는 학인들 한 명 한 명이 어느 때보다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고, 그 헤어지는 아쉬움도 배가된다.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누군가가 출가해서 스님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학인 스님들은 정식 스님, 즉 비구(比丘)가 되기 위해 4년 동안 교리 공부, 예불, 운력, 봉사활동 등을 매일 반복하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절차탁마해나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그래서 그 첫 과정을 매듭짓는 승가대학의 졸업식은 나름대로 작지 않은 의미가 있다. 세속에서처럼 환호가 터져 나오는 떠들썩하거나 격한 축하의 분위기는 아니지만, 차분한 가운데 그 성취와 기쁨을 모두 함께 나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부터 산중의 어른 스님들과 소임자 스님들뿐만 아니라 산중 식구들까지 한자리에 모여서 학인 스님들의 앞날을 축복해준다. 요즘에는 학인 스님들의 성장과 성취를 축하하기 위해 속세의 가족들까지 참석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이내 졸업식장에서는 몇 명 안 되는 졸업자들이지만 그간의 학업과 수행의 성취도에 따라 다양한 상과 부상이 주어진다. 세간의 공명과는 무관한 수행자에게 그 상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어린 학인 스님들을 독려하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그런 차원에서 올해는 학인 스님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항상 졸업식에서 으레 건네는 꽃다발과 뻔한 축하 인사보다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학인 스님들의 출가 이야기를 모아서 책으로 엮어냈다. 원래 작문 수업을 담당하면서 학인 스님들이 과제로 제출한 원고들을 정리해서 다듬어보았다. 고뇌와 번민 속에서 어려운 결단을 내린 젊은이들이 어떤 동기에서 출가하고, 출가 이후에 어떤 생각의 변화를 겪고 있는지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다. 학인 스님들이 대중 생활에서 오는 갈등을 극복해나가면서, 고단한 일상을 수행의 장으로 승화시켜나가는 저마다의 이야기는 때로는 미소 짓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학인 스님들의 투박한 듯하나 진실하고 꾸밈없는 자기 성찰을 접하면서 세상에 이 이야기가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자신의 글이 실린 책을 신기한 듯 두 손에 받아든 학인 스님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언젠가는 이들이 수행자로 성장해가면서, 중간에 쓰러지고 좌절하는 일순간이 있을 것이다. 훗날 오늘을 뒤돌아보았을 때, 자신의 글이 조금이나마 새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초발심의 증거가 되었으면 한다.
해제일이 지나서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과 선원의 수좌 스님들이 모두 떠난 산중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절집 그 자체이다. 고요하고 또 고요하다. 안 그래도 고요한 산중인데 스님들마저 썰물이 빠져나가듯 산문을 나서니, 큰 절이 텅 비어버린 듯하다. 이제 번다하고 시끄러운 일들이 잦아들어 적막만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따금 계곡 바람에 대나무가 부딪히고 사각대는 소리가 문풍지 너머로 들려온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이다. 고요한 침묵 속에 보이차를 정성껏 달여서 찻잔에 따라본다. 유난히 눈도 많이 내리고, 모질도록 추웠던 지난 석 달 동안거가 또 지나갔다. 법당, 공양간, 강의실 곳곳에 졸업생들이 나간 빈자리는 봄이 되면 새로운 학인 스님들이 채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산중의 주인공들은 바뀌어가고, 어느새 계절 또한 바뀌어간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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