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 제 가족이…” 애원하듯 한국구조팀을 잡아끌었다[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아이 셋 5일 동안 갇혀 있어”
부부가 울다 쓰러지길 반복
“저기, 저쪽에서 소리가 들려요. 제발 가서 확인해주세요.”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에서 한 여성이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구조대원의 팔을 애원하듯 잡아끌었다.
“저 아래 제 가족이 있어요. 이웃들까지 최소한 다섯 명은 묻혀 있어요.”
무너진 아파트 잔해 더미 아래서 가족의 소리가 들린다는 이 여성은 애가 타서 발만 동동 굴렀다. 한국 구조팀은 구조견을 데리고 지체없이 여성을 따라 현장으로 달려갔다.
여성이 구조팀과 함께 폐허가 된 붕괴 현장 가까이 들어가려 하자, 아이가 “엄마, 엄마, 거기 들어가지마”라고 울면서 외쳤다. 눈앞에서 너무 많은 죽음을 목격한 아이는 엄마까지 잃게 될까 두려워했다. 여성은 “엄마 그냥 들어가게 해줘!”라고 아이를 향해 울부짖었다.
안타키아는 규모 7.8 강진의 직격탄으로 이날까지 1만90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한 튀르키예 내에서도 가장 참혹한 피해를 입은 곳이다. 땅은 갑자기 갈라진 상처처럼 벌어져 있었고 어디까지가 길이고, 어디까지가 붕괴 현장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도로는 쓰러진 벽면의 콘크리트 더미가 넘쳐 흘렀고, 온통 자욱한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건물들은 그냥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주먹으로 위에서 으깬 것처럼 바스라져 있었다. 40만명 이상 살던 이 도시에 남은 것은 통곡과 폐허뿐이었다.
또 다른 붕괴 건물 앞에서 한 여성이 울고 있었다. “우리 아이 셋이 다 여기 5일 동안 갇혀 있어요.” 여성은 울다 쓰러지길 반복하며 구조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주민들은 추가 붕괴 위험이 큰 건물 안을 맨몸으로 헤집고 들어가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제발 살아있어 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72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지금 구조대가 매몰 현장에서 발견하는 것은 생명보다 시신이 더 많다.
“일동, 경례!” 구조단은 시신을 수습할 때마다 천을 덮어준 후 마지막 가는 길을 향해 경례를 했다.
안타키아의 시신 안치소는 수용인원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거리에는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이 그냥 방치돼 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지만 잠에 드는 이는 없었다. 대지진 나흘째인 9일 밤(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의 지진 피해 현장에는 눈부신 조명과 심연 같은 어둠이 엇갈렸고, 비통한 침묵과 따뜻한 위로가 교차했다.
아다나 시내 유르트 마을에 있는 아파트 붕괴 현장에선 밤에도 조명을 켜놓고 중장비를 동원한 구조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아파트 한 채에서만 20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인근의 또 다른 아파트 붕괴 현장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선 40여명이 실종됐다.
다음주 출산을 앞둔 제이란(28)은 아파트 잔해 더미 위로 올라가 콘크리트 더미를 들어올리고 있는 중장비의 움직임을 눈물이 고인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제이란은“우리 집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저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붕괴된 아파트 현장에는 냉장고 자석부터 전자계산기, 캐릭터 상품 등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휘어진 철근 사이로 소파, 매트리스, 대야, 어린아이 공책 같은 것들도 보였다. 아파트 붕괴 현장 골목을 내려가니 재난관리청(AFAD) 텐트 200여개가 모인 큰 대피소가 나왔다.
모닥불가에 붙어 앉아 추위를 녹이고 있던 일마드(65)·으센(59) 부부는 지진 이후 필요한 물건 몇 개를 급히 챙기러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집이 무너지지 않은 주민들도 “여진이 올까 두려워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슈크란(36)은 “너무 무서워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 열일곱 살, 열두 살 애들도 무서워한다. 다들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학교, 사원, 텐트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제이란 역시 그날 밤 집에서 뛰쳐나온 이후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출산은 다른 도시에서 할까 고민 중이다.
그는 “잘 때마다 무섭다. 아직도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잠들었던 새벽 시간에 지진이 났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들은 잠드는 것조차 무섭다고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14~15일쯤 다시 큰 지진이 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펙(31)은 “진짜로 지진이 올까봐 무서워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여진 공포에 잠드는 게 무섭지만…이웃들 서로 도우며 버팀목돼
아다나 시내 아파트 붕괴 현장
음식 나누고 밤새 봉사하고
집 잃은 이들 곁에서 힘 보태
‘큰 지진 온다’ 소문에 불안도
무너진 일상을 지탱해가는 힘은 이웃이었다. 모닥불 사이사이로 음식과 구호물품을 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다. 사람들은 추위를 잊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타주는 커피를 줄 서서 받아갔다.
슈크란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밥하고 심부름할 일손이 필요하다. 새벽 4시까지 도울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기저귀, 이유식, 약, 음식, 우유, 신발 등등 필요한 것이 많다. 급하게 대피하느라 양말도 못 신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에컨(21)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이곳에 나와 자원봉사를 한다. 그의 누나 에브루(32)는 “방한용품, 의류, 담요 같은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자기 물건을 가져다주는 이웃들이 많다”고 말했다.
“신이시여, 우리가 무엇을 했길래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우리에게 왜 이런 일들이 생기나요. 이것도 신의 시험인가요?”
시리아 이들리브에서 지진을 맞닥뜨렸던 무하마드 하지 카두르가 뉴욕타임스(NYT)에 보낸 기고문에서 했던 질문이다. 튀르키예 대지진 참상을 지켜본 이는 누구나 이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타이주에 있는 하타이트레이닝&리서치 병원 야외 주차장은 시신 안치소로 변했다.
그러나 집을 잃은 이웃을 위해 발 벗고 나서 음식을 나르며 밤새 봉사활동을 하고, 출산을 일주일 앞둔 몸으로도 싸늘한 야간 구조 현장 앞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안타키아 |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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