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르포] ①텐트 ②차량 ③이재민 임시센터... 지진 피해자들 임시 거처는 이랬다
가지엔테프 거리, 집 떠난 주민들로 가득해
붕괴 건물 900개... 넓은 공터마다 임시 텐트
무너지지 않은 집도 안전성 우려... 퇴거 명령
"1년 내 재건? 불가능할 것" 주민들은 불신
튀르키예에서 규모 7.8의 강진으로 발생한 이재민은 정부 추산 75만 명에 이른다. 지진 때문에 실제로 집이 무너진 이들뿐 아니라, 아직은 멀쩡해 보이는 집의 붕괴 위험성 때문에 거리로 내몰린 이들도 포함한 수치다. 튀르키예 정부는 여진 등을 감안, 안전성이 떨어지는 건물에서 퇴거하도록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한국일보는 9일(현지시간) 이번 지진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가지안테프를 찾아 이재민들이 현재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①임시 텐트… 안에선 '10개월' 아기가 잠자고 있어
가지안테프는 80㎞쯤 떨어져 있는 카라만마라슈보다는 그나마 직접적 피해가 덜한 곳이다. 그러나 붕괴된 건물은 무려 900개에 달한다. 이곳 역시 거처를 잃은 사람들로 거리가 꽉 찼다. 상점도 모두 문을 닫았다.
넓은 공터마다 빠짐없이 있는 건 구호 텐트다. 주차장, 운동장 등은 '텐트촌'이 됐다. 가지안테프 시립박물관 근처 주차장에도 흰색 텐트가 10개쯤 있었다. 텐트는 방수천으로 만들어졌다. 가로·세로 길이는 3~4m쯤으로 보였다.
시리아 출신 A씨가 자신이 머무는 텐트 안으로 안내해 줬다. 사방이 막혀 있긴 했지만, 썰렁했다. 섭씨 0도 안팎인 차가운 공기를 다 막아주진 못하는 탓이다. 손쉬운 설치와 분리가 가능하도록, 천과 천을 지퍼로 연결해 만든 텐트였다.
내부 공간은 세 곳으로 구획돼 있었다. 일반적인 집으로 따지면 현관과 거실, 안방이다. 거실엔 기저귀, 휴지, 물 등 생필품이 있었다. 안방으로 향하는 문엔 추위를 막아줄 헝겊이 붙어 있었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생후 10개월 아기가 잠을 자고 있었다. 몸엔 두꺼운 점퍼와 담요 여러 개가 둘러져 있다. A씨는 "아기가 '0세'인데 텐트에 살게 됐다"고 했다. 이곳엔 아이 11명을 포함, 총 16명이 살고 있다.
②집이 돼 버린 차 "들어갈 땐 신발 벗고…."
차량이 곧 집이기도 하다. 시리아 출신 의사 알리씨는 두 대의 차 안에서 형의 가족과 함께 생활한다. 그는 "내 차는 지진 때 창문이 깨져 바람이 들어오기 때문에, 형의 봉고차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처럼, 봉고차 앞에는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실 알리씨의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바깥에서 생활하는 건 안전성 우려 때문이다. "정부는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하루에 한두 번은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위험은 여전하다.
대학생 에르마씨는 부모님과 함께 텐트와 차량을 오가며 살고 있다. 튀르키예의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다 방학을 이용해 부모님 집으로 왔다는 그는 지진 발생 순간에 대해 "정말로 갑자기"라고 표현했다. "7개월 만에 집에 돌아온다고 기뻐했었는데, 실제 집에 머무른 시간은 고작 4~5시간뿐입니다. 우리 집이 정말 그리워요."
③모두가 뒤엉킨 이재민 센터… "로비에만 수백 명"
그나마 '안전' 판단이 내려진 건물은 이재민 센터가 됐다. 시립박물관이 그렇다. 내부는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잡했다. 박물관을 소개해 준 알리씨는 "한눈에 봐도 300~400명쯤 있는 것 같지 않나"라고 했다. "사람이 워낙 엉켜 있어서 정확히 몇 명이 머물고 있는지 세어 볼 생각조차 안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재민들에게 필수적인 담요나 이불 등은 먹다 남은 음식들과 함께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개인 공간'은 수십 센티미터(㎝)조차 없다. 그래도 건물 내부라 텐트나 차량보단 따뜻하다. 아이들과 여성들이 주로 이곳에 머무르는 이유다.
물론 자신의 집에서 계속 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안락하진 않다. 이번 지진은 운 좋게 피했으나, 또 다른 지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하루하루가 두려움의 연속이다.
특히 난방도 잘 되지 않고 온수도 나오지 않는 게 문제다. 가지안테프를 비롯, 지진 피해 지역들에 가스 공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이 끊긴 사람들이 주변을 수소문해 전기를 빌려 쓰려 하지만, 이마저도 현금이 없으면 거절당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에네스씨는 "튀르키예 정부가 '1년 안에 도시를 원상 복구시키겠다'고 하던데, 도시 상황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가지안테프(튀르키예)=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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