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1시간짜리 교향곡을 어떻게 듣냐고?

2023. 2. 1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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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강렬한 것에 익숙한 시대
여전히 클래식 마니아층 존재
‘음표에 담긴 우주’ 새로운 경험
완주 강박 탈피… 순간 즐기면 돼

클래식 음악에는 1시간짜리 교향곡들이 있다. 놀랍게도 그렇다. 잘 알려진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합창’만 해도 70분 정도의 길이다. 그마저도 유명한 4악장이 나오기까지 45분가량 걸린다. 극단적으로 나아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은 두 시간에 달하기도 한다. 이건 영화 한 편인 셈이다.

짧고 강렬한 것에 익숙해진 시대다. 이제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도 어색하게 느낀다. 이들을 위해 영화 내용을 요약해주는 유튜브 채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빠르게 결말을 봐야 한다. 더 나아가 짧은 영상들이 주류를 이루는 유튜브 시대에 돌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틱톡 등 1분이 안 되는 쇼트폼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흐름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2’도 비슷한 이유로 겁부터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2시간짜리 영화도 길게 느껴지는 시대에, 제임스 캐머런은 3시간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은 어떨까? 음악은 점점 짧아져 3∼4분 정도가 표준이 되었다. 심지어 그것마저 하이라이트로 편집된 영상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음악가들에게도 ‘어떻게 하면 효율 좋은 음악으로 승부할 것인가’가 중요한 고민이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기승전결을 만들고 결말까지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교향곡을 듣지 않는 이유는 당연하다. 끝까지 듣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대체 언제 끝나는데?

‘교향곡은 왜 듣는가?’, ‘거기엔 대체 무엇이 있길래 1시간이나 투자하는가?’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여전히 클래식 음악들을 선호하고, 즐겨 듣는 층이 분명히 존재한다. 심지어 인기 있는 클래식 연주자 공연은 유명한 가수들 공연만큼 매진까지 10초가 걸리지 않는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여기에 쓰는 걸까? 바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이다. 물론 교향곡은 길이도 길고, 구조도 복잡하다. 하지만 그 대신 이 장르엔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기나긴 교향곡의 주인공 구스타프 말러가 남긴 말이 유명하다. “교향곡은 하나의 세계와 같아서 모든 것을 다 끌어안아야 한다.” 교향곡의 정의를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준 말이다. 말 그대로 말러는 온 우주를 그곳에 두고 왔다. 군대의 나팔소리, 고요한 밤을 채우는 풀벌레 소리, 썰매방울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천사들이 속삭이는 소리는 모두 음표로 바뀌어 하나의 세계 속에 편입된다.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에 사용되어 유명해진 음악도 바로 말러의 작품 중 하나다.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사용되었다. 말러가 미래에 자신의 부인이 될 알마에게 보낸 연애편지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주인공 해준과 서래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도 절묘하게 사용된다. 말러 교향곡 5번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 ‘멀리서 들리는 장례음악’, ‘어린 시절 들었던 군대 나팔 소리’ 같은 것들이 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 사이로 짧게 지나가는 게 이 ‘아다지에토’라는 사랑의 순간이다. 위태롭지만 아름답게 빛난다. 말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박제되어 있다. 이 순간만큼은 작품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그게 뭐가 중요할까?

순간순간이 중요하다. 강박적으로 작품을 끝까지 완주할 필요도 없다. 중간에 멈춰도 좋으니, 순간순간을 경험해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을 준다. 작품의 결말만을 위해 달려간다면 쉽게 지친다. 너무 긴 시간이다. 멈춰서 아름다운 사랑에 눈물 흘리고, 그들의 두려움에 공감하면 된다. 서사가 짧게 빠르게 진행되는 음악들보다 경쟁력을 가지는 지점은 여기부터다. 책을 읽는 행위와 비슷하다. 음악은 글자가 아닌 음표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등산과 거리가 먼 내게, 등산을 좋아하는 지인이 해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등산을 하면 재미가 없어. 가는 길에 만나는 꽃들과 나무들이 아름답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올라가 있을 거야.”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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