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 제 가족이…” 애원하듯 한국구조대를 잡아끌었다[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김서영 기자 2023. 2. 1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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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건물들이 규모 7.8 강진의 영향으로 바스라져 있다. 안타키아 | 문재원 기자

“저기, 저쪽에서 소리가 들려요. 정말 가까이서 소리가 들려요. 제발 가서 확인해주세요.”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에서 한 여성이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구조대원의 팔을 애원하듯 잡아끌었다.

“저 아래 제 가족이 있어요. 이웃들까지 최소한 다섯명은 묻혀 있어요.”

무너진 아파트 잔해 더미 아래서 가족의 소리가 들린다는 이 여성은 애가 타서 발만 동동 굴렀다. 한국 구조팀은 구조견을 데리고 지체없이 여성을 따라 현장으로 달려갔다.

여성이 구조팀과 함께 페허가 된 붕괴 현장 가까이 들어가려 하자, 아이가 “엄마, 엄마, 거기 들어가지마”라고 울면서 외쳤다. 눈 앞에서 너무 많은 죽음을 목격한 아이는 엄마까지 잃게 될까 두려워했다. 여성은 “엄마 그냥 들어가게 해줘!”라고 아이를 향해 울부짖었다.

튀르키예 강진 5일째인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한 주민이 폐허로 변한 붕괴 건물 잔해 앞에서 얼굴을 감싸쥐고 앉아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구조대원들이 장비를 들고 바삐 걸어가고 있다. 뒤로 매몰 현장이 보이고, 거리의 건물들도 2차 붕괴가 일어나기 직전이다.

이날 오후 안타키아에 들어선 순간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안타키아는 7.8 규모 강진의 직격탄으로 이날까지 1만90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한 튀르키예 내에서도 가장 참혹한 피해를 입은 곳이다.

땅은 갑자기 갈라진 상처처럼 벌어져 있었다. 어디까지가 길이고, 어디까지가 붕괴 현장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도로는 쓰러진 벽면의 콘크리트 더미로 넘쳐 흘렀고, 온통 자욱한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건물들은 그냥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주먹이 위에서 으깬 것처럼 바스라져 있었다. 40만명 이상이 살고 있던 이 도시에 남은 것은 통곡과 폐허 뿐이었다.

원래 형체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또 다른 붕괴 건물 앞에서 한 여성이 울고 있다. “우리 아이들 셋이 다 여기 5일째 갇혀 있어요.” 여성은 남편과 함께 나흘동안 이 앞을 떠나지 못하고 울고 쓰러지길 반복하며 구조 작업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마음이 급한 주민들은 추가 붕괴 위험이 큰 건물 안을 맨몸으로 헤집고 들어가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제발 살아있어 달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골든 타임’으로 여겨지는 72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지금 구조대가 매몰 현장에서 발견하는 것은 생명보다 시신이 더 많다. 죽어서야 땅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잔해 아래서 얼마동안 버티다가 끝내 숨을 거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날 KDRT는 지진으로 붕괴된 고등학교 건물 안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했지만, 생존자를 발견하기 힘들어 보였다.

“일동, 경례!” 구조단은 시신을 수습할 때마다 천을 덮어준 후 마지막 가는 길을 향해 경례를 했다.

튀르키예 강진 5일차인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가 시신을 수습한 후 경례를 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안타키아 지역의 시신 안치소는 이미 수용인원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거리에는 미처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이 그냥 방치돼 있다. 병원으로 옮겨진 시신들도 거대한 야외 시신 안치소로 변해버린 주차장에 일렬로 놓여졌다.

안타키아 |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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