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 황제와 췌장암 투병 한국계 물리치료사의 7년 우정

정지섭 기자 2023. 2.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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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투병 중인 한국계 여성 스포츠 물리치료사 에스더 리(45)와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스노보드 황제’ 숀 화이트(37)의 애틋한 우정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에 소개됐다. IOC가 선수나 코치가 아닌 스태프를 비중 있게 소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에스더 리는 2022 베이징 올림픽 회고 특집으로 최근 올라온 영상 인터뷰에서 지난해 2월 올림픽 스노보드 하프 파이브 경기 당시를 회고했다.

에스더 리가 숀 화이트와 함께 찍은 사진. 손가락의 반지는 화이트가 끼워준 미국 올림픽 대표팀 반지이다. /에스더 리 인스타그램

당시 평창 대회에 이어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으로 선수 생활 피날레를 장식하려던 화이트는 4위로 대회를 마감했지만, 최선을 다한 경기로 박수를 받았다. 화이트는 선수와 물리치료사의 관계를 떠나 남매처럼 돈독한 우정을 나눠온 리와도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리는 “췌장암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도 화이트가 용기를 북돋워줘 꿈에 그리던 그의 마지막 연기를 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다 테니스 스타 비너스·세리나 윌리엄스 자매와 인연을 맺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윌리엄스 자매는 자신들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살뜰하게 살피는 리에게 큰 신뢰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2016년 화이트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화이트는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대회 3연패에 실패한 뒤 ‘한물갔다’는 비아냥을 들으며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명예 회복을 벼르고 있었다. 화이트는 큰누나처럼 다정다감하게 자신을 보듬는 리에게 크게 의지했고, 결국 평창에서 통산 세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수확했다. 그러나 이후 리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마지막 올림픽이 될 베이징 대회를 앞둔 2020년 7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리는 “우리 할머니가 같은 진단을 받은 뒤 불과 수 주 뒤에 별세한 기억을 떠올리고, 나에게 앞으로 살날이 몇 주나 남았을까 싶었다”고 회고했다.

에스더 리가 숀 화이트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인 2022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함께 찍은 사진. /IOC 홈페이지

그리고 진단 직후 충격과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무작정 전화를 돌린 지인 중 한 명이 화이트였다. 소식을 들은 화이트는 수화기 너머로 한참을 흐느끼더니 리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든 내가 함께할게요. 우리는 베이징으로 함께 갈 겁니다.” 리는 “숱한 시련 속에서도 결국 이겨낸 화이트의 회복력과 격려가 내가 현재를 버텨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췌장암 환자와 가족·후원자 모임에도 활발히 참석하고 있다. 리는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 화이트가 자신의 손가락에 미국 올림픽 대표팀 반지를 끼워준 사진을 올려놓고 “’팀 화이트’의 일원이 될 수 있어 영광이었고, 또한 당신이 ‘팀 에스더’의 멤버가 되어줘서 더없이 기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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