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꼬시는데 ‘공식’이 있다고?...천재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Books]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2. 1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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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먼 평전
제임스 글릭 지음, 양병찬·김민수 옮김, 동아시아 펴냄

20세기 최고의 천재를 꼽으라고 하면 과학자들은 이 남자를 꼽는다. 전후 세대의 과학을 지배한 리처드 파인먼(1918~1988). 그는 현대 물리학의 이정표를 세웠고, 역사에 남을 명강의를 남긴 교육자였으며, 부와 명예를 거부한 노벨상 수상자였다. 그의 인생을 통해 20세기 물리학의 결정적 순간을 회고하는 평전이 나왔다.

생전에 책 한 권 쓰지 않았지만, 그의 친구 랄프 레이턴이 일화를 기록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자서전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의 후광으로 인해 그에 관한 책을 쓰는 건 엄청난 도전이다. 그럼에도 우려를 불식시키는 건 저자의 이름이다. ‘카오스’와 ‘인포메이션’을 쓴 과학 작가 제임스 글릭이다.

1918년 뉴욕에서 태어난 파인먼의 삶은 짧게 요약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업적이 방대하다. 파인먼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오늘날 반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양자전기역학을 완성했고, 27세의 나이에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참가해 핵폭탄의 발명에 기여했다. 죽기 직전에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의 진상을 밝혔다. 나노기술의 최초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친구인 분자생물학자 막스 델브뤼크의 연구실에서 DNA 돌연변이 기제를 밝히는 데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모든 것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그를 대표하는 문장은 물리학도들에게는 성경과 같다.

이 책은 포코노 회동으로 이야기를 연다. 1948년 봄,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호출로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세계 최고 물리학자 27명이 펜실베이니아주 북부 포코노산맥의 호텔에 은밀히 모였다. 이런 거물들이 비공개로 모인 건 과학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칠판 2개와 술잔 82개를 가지고 시작한 회동에서 과학자들은 밤늦게까지 이론을 발표하고 논쟁했다. 시건방진 젊은 과학자 파인먼은 동갑내기 라이벌 줄리언 슈윙어에 이어 자신의 새로운 물리학 수식과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완벽하지 못했던 그의 이론은 수소폭탄의 아버지 에드워드 텔러와 양자론의 아버지 닐스 보어 등에게 반박당했다. 파인먼이 칠판에 그린 닭장 철망을 닮은 육각형 모양 다이어그램으로는 보어를 설득하지 못했다. 파인먼은 핵폭발 효율의 핵심을 도출한 방정식에 기여할 정도로 계산에 뛰어나고 물리학에 열정적이었지만 문학에는 이상할 정도로 문외한이고 증명에는 신중치 못했다.

이날의 굴욕을 계기로 파인먼은 절치부심했다. 훗날 실험을 통해 빛·전파·자기·전기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총망라하는 완벽한 이론체계를 확립해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게 된다. 저자는 “아인슈타인 이후, 자연이 던지는 수수께끼의 도전을 주저없이 받아들인 물리학자는 파인먼밖에 없었다”고 평가한다.

이 책은 ‘라디오 수리공’으로 이름을 떨치며 과학에 매료된 소년의 삶을 따라간다. MIT, 프린스턴, 맨해튼 프로젝트가 이뤄진 로스 엘러모스를 거쳐, 코넬, 캘테크에 이르기까지 그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열정적인 삶을 조망해나간다.

널리 알려졌듯 파인먼은 괴짜였다. 대학교수답지 않고 자유분방해 젊은 시절에는 술집을 집처럼 드나들었고, 춤꾼처럼 풍부한 몸짓과 배우같은 말투로 강의실을 점령했다. 그는 과학사에 등장하는 윤색된 신화를 경멸했지만 자기가 신화가 되는 걸 막지는 못했다. 그의 주특기는 실용적 지식이었다. 그림을 감상한 적도,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고, 교양서적은 물론 과학책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도 학습 능력이 남달라 배워야 할 건 어떻게 해서든 배우고 말았다. 드럼 연주, 술집에서 여자 홀리는 법 등을 스스로 익힌 후 모두 나름의 규칙이 있다고 결론 내렸고, 원자폭탄 제조를 연구하면서도 짬짬이 옆길로 빠져 자물쇠 따는 법, 금고 여는 법 등을 알아내곤 했다.

무지의 바다에 실용 지식의 섬을 띄워온 이 천재는 사인 공세를 피하고 강의 초청을 거절하는 법, 노화 공포증을 이겨내는 법 등을 마스터하고 종국에는 암과 함께 사는 법과 암에 항복하는 법을 몸소 증명했다. 라이벌 슈윙어가 그의 묘비명에 “솔직한 인간, 우리 시대의 걸출한 직관주의자, 과감하게 남들과 다른 장단에 맞춰 춤추면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를 몸소 보여준 본보기”라고 썼을 정도다.

원자폭탄 발명으로 물리학이 큰 힘을 갖게 된 이후 후대의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모든 이치를 통합하는 기본 법칙을 도출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스티븐 호킹 또한 “자연의 궁극 법칙에 대한 탐색이 막바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1980년대에는 통합을 위한 연구에서 수학적으로는 강력하지만 실험적으로는 검증이 불가능한 ‘끈이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파인먼은 마지막까지 끈이론가들이 검증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의심했다.

“두 번 죽는 건 싫어, 너무 지루하거든.” 이 말을 남기고 암 투병 끝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천둥벌거숭이로 태어나 자연의 이치를 깨친답시고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 여기저기 기웃거렸을 뿐이다”라고 겸손하게 자신의 업적을 돌아봤던 거인의 죽음이었다.

파인먼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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