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계절의 변화 느끼며 무거운 마음 덜어주는 ‘산책’

한겨레 2023. 2. 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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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상념을 잊는 데는 산책만한 것이 없다.

풍경은 영락없이, 다니구치 지로의 <산책> 에 나온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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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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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우리나라의 저작권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구입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이미 동영상 제공 플랫폼 인기 순위 10위 안쪽에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라 한국 책에 대한 인기도 곧 뒤를 따를 것이 분명하다. 한국과 대만은 공유하는 책과 드라마가 늘어나면서 더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가장 큰 국가 전시관을 운영했다. 75개 출판사가 책을 출품했다. 김연수, 손원평, 장류진 등 한국 작가 강연도 청중들로 빼곡했다. 만나는 대만 출판사마다 내년엔 더 많은 작가들과 함께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코로나19의 시대를 지나면서 비대면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 더 수월해졌고,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책의 내용을 검토하고 계약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독자들은 작가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고, 화면을 두고 나누는 이야기가 아직은 직접 만난 경험에 미치지 못한다. 대만의 해외도서전 운영을 책임진 사람들이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대만의 국가관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결정이 얼마나 좁은 시야에서 내린 옹졸한 결정인지 설명하는 데 반나절을 보냈다. 두 나라의 책과 독자들을 잇고 싶다는 내 마음이 전해졌길 간절히 바란다.

대만을 갈 때마다 나라가 처한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 마음이 짠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코앞인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에 전쟁이 일어날 곳으로 대만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상대도 거친 말과 실력행사를 하니 실제로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전세계에서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팔라우, 나우루, 투발루, 마셜제도, 벨리즈, 온두라스, 과테말라, 아이티, 세인트루시아,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파라과이, 에스와티니, 바티칸 등 14개국밖에 없다. 대만의 젊은이들이 나라 밖으로 여행하거나 일을 하는 데 불편할 수밖에 없다. 전쟁 위험 순위로 서너번째를 다투는 한국 사람이다 보니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한다.

무거운 상념을 잊는 데는 산책만한 것이 없다. 500미터가 넘는 높이의 타이베이 101을 중심으로 번화한 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작고 정겨운 골목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섭씨 15도 주변을 맴도는 따듯한 곳이라 벌써 벚꽃이 피었다. 동백인가 갸웃했는데, 기온을 생각하면서 끄덕였다. 풍경은 영락없이, 다니구치 지로의 <산책>에 나온 골목이다. 작가는 이 만화책에서 말풍선을 최대한 줄이고 그림의 구성만으로 기분과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작가가 집을 나서면서 만난 벚꽃과 골목 풍경 그림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고졸한 아름다움이었는데, 뜨거운 도서전의 열기를 벗어나 만난 타이베이 골목에서 정확하게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 위에서 발견하는 자질구레한 사실들, 숨어 있는 장소들을 찾는 기쁨. 작가는 탐조가의 망원경을 빌려 박새를 보기도 하고 도로 위의 타일 문양에서 잠자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산책은 날씨의 변화도 그대로 몸으로 맞는 일이라 눈도 맞고 비에도 젖는다. 나는 골목에 숨은 맛집에서 초면에 양념을 얹어 한그릇 뚝딱 해치웠다. 다시 걸을 힘이 난다.

만화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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