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자유롭게, 그러나 공감하면서

2023. 2. 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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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부드럽고 착용감 좋은 실크 스타킹을 처음 신어 본 후 다시는 모직 스타킹을 신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 켤레 값이 시종 한 사람 연봉과 맞먹는 물건이었기에, 신하들은 여왕의 지나친 사치를 염려했다. 오늘날 실크 스타킹은 여왕이나 즐기는 사치품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일용품이 되었다. 산업혁명에 따른 혁신 덕분이다.

혁신은 소수만 누리던 것을 다수가 누리도록 만드는 일이다. 권력의 혁신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퍼뜨리고, 인권의 혁신은 억압과 차별의 철폐를 낳고, 경제의 혁신은 부의 진보와 확산을 가져오고, 국가의 혁신은 강하고 부유한 국가를 이룩한다. 혁신은 낡은 사회를 창조적으로 파괴해 발전과 번영으로 이끈다. 이러한 혁신의 작동 원리를 누구보다 선명히 통찰한 사람이 애덤 스미스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글항아리 펴냄)에서 장경덕은 애덤 스미스를 자유의 경제학자이자 도덕의 철학자로 부른다.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이면서 타인의 행복과 불행에 공감하는 도덕적 존재다. 자유는 혁신의 가장 큰 동력이다. 부와 번영은 자유를 보장하고 촉진할 때 쉽게 생겨난다. 그러나 합리적 이익 추구의 한계가 있다. 공감이다. 이기적 행동이 타인의 고통을 낳는 순간, 인간은 기꺼이 그 행동을 멈출 줄 안다.

정의의 법칙을 존중할 때, 경제적 자유는 진정한 혁신을 이룩한다. 공정 없는 거래는 깨어지고, 정의 없는 협력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국부론'에서 스미스가 최저임금 같은 임금에 대한 법적 규제를 옹호하는 이유다. 그 제도가 "노동자에게 유리할 땐 언제나 정당하고 공평하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올바른 작동은 '도와주는 손'의 존재에 달려 있다.

스미스는 자유를 극대화할 때 부와 번영이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나, 그 자유는 함께 건설하고 발전시켜야 할 체제라고 여겼다. 정의 없는 자유, 인간적 미덕과 공동체의 가치를 바탕으로 삼지 않는 자유는 재앙을 낳을 뿐이다. 극심한 양극화, 임박한 기후 위기 등은 그 뚜렷한 예다. 스미스는 노예제가 풍요의 필요조건이라면 온 세상이 가난한 편이 낫다고 말했다.

자유의 철학은 곧 공감과 정의의 철학이다. 타인의 기쁨과 슬픔, 특히 약자들의 표정을 마음의 재판관으로 삼지 않는 자유는 탐욕을 부추기고 불평등을 정당화해 국가를 무너뜨리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결국 거기엔 부도 없다. 공감하는 인간들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해야 부와 행복을 동시에 거머쥐는 양손잡이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자유를 말하고 혁신을 부르짖기 전에 먼저 가슴에 담아둘 점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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