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경제산책] 영원한 것은 없다:일본은행의 제로금리

2023. 2. 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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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상수 日 제로금리
4월 일본은행 총재 바뀌면
금리인상으로 전환 가능성
금리인상은 엔화 강세와
더불어 원화강세도 유발
환율방어 부담 덜어 줄 것
다만 인상 상한선은 1%
정부부채 때문에 많이 못 올려

'아휴, 일본의 제로 금리는 상수(常數)예요. 변할 수가 없어요. 변수(變數)가 아니라니까요!'

작년 여름의 일이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자 한 펀드매니저가 대답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상황이 변하는 금융시장에서 영원한 것은 정말로 없다. 그런 금융시장에서 영원할 것 같은 게 있었는데 바로 일본은행의 제로금리 정책이다.

그동안 각국의 중앙은행이나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일본은행의 제로금리는 상수로 놓고 계획을 수립했다. 일본은행의 제로금리 정책은 2013년 아베 신조 정부와 같이 시작해 변화 없이 거의 10년간 지속된 정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와 일반금리 정책을 왔다 갔다 했지만 일본은행은 특유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제로금리 정책을 계속했다.

그랬던 일본은행이 올해 4월 총재가 바뀌면서 본격적인 금리 인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상수였던 상황이 변수로 바뀌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본격적인 금리 인상을 하기 전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미리 간을 보았는데 작년 12월 말에 예고 없이 10년물 국채 수익률의 변동 범위를 ±0.25%에서 ±0.50%로 확대한 것이다.

국채 수익률 변동의 상한을 0.50%로 올렸다는 것은 금리 인상을 일부 허용한 것이다. 일본은행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부인하지만 이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신호다. 보수적인 일본은행은 사소한 정책 운용의 변화에도 많은 직원이 모여서 수십 번 파급효과를 예상해 본다. 미리 계획된 의도가 없이는 작은 변화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독립적인 중앙은행이라는 일본은행의 금리 정책 변화가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경기 회복을 위해 제로금리가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일본은행의 제로금리 정책에 화가 나 있다. 엔화 약세에도 일본의 수출이 감소하고 인플레이션이 4%대에 진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마이너스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던 일본에서 4% 인플레이션은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이고 40년 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이기도 하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의 임기 동안에 인플레이션이 역사상 가장 높았다고 기억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시간표는 어떻게 진행될까. 앞으로 불확실한 요인이 많지만 지금 합리적 기대를 해 보면 다음과 같다. 4월에 일본은행은 총재가 교체되면 기준금리를 직접 올리는 것보다 장기채권 수익률의 변동폭을 국채 10년물에서 5년과 3년물로 확대할 것이다. 일본은행은 다른 중앙은행들보다 특별히 조심스럽기 때문에 이를 통해 오랫동안 제로금리에 적응돼 있던 시장의 반응을 살펴볼 것이다. 변화를 수개월 살펴본 후 시장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판단되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특이한 상황은 기준금리 인상 폭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기준금리의 상승은 정부 채권을 50% 이상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행 대차대조표에도 악영향을 준다. 일본 정부 채권의 가산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내총생산(GDP)의 260%가 넘는 정부 부채 때문에 이자율 상승은 재정 부담을 더 무겁게 한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달리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상한선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은행은 아마도 기준금리를 1% 이상으로 올리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세계 4대 경제 대국이면서 동시에 세계 최대 채권국인 일본의 금리 인상은 많은 것을 변화하게 할 것이다. 일본의 보험회사와 증권사는 미국 주식과 채권에만 약 2500조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일본은행의 금리 상승 정도에 따라 이들 자금이 일본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또한 그동안 하락만 하던 엔화는 강해지고 달러화와 금의 강세는 주춤할 것이다. 달러화 약세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줘 원화를 강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환율 방어를 위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부담을 덜어주게 되는 것이다.

[김세완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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