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무등산 폭격기' 김현석

정완주 기자 2023. 2. 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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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전서 쿠드롱 격파, PBA 인기몰이
“여괴전”(역회전) “야개요”(약해요)
구구한 사투리 해설 ‘빵’ 터져
​프로당구 선수 김현석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PBA 투어에 뛰어들기 전부터 당구 팬들을 들었다 놓은 선수.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무장한 당구 해설가이자 시즌 막판 PBA 데뷔전을 치른 김현석(50)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2021년부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로 활약한 김현석은 투박하면서 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앞세워 당구 해설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당구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가 해설을 맡은 경기는 동시접속자가 급증하면서 댓글창이 난리가 난다. 스타 해설위원으로 '팬덤' 현상까지 불러일으켰다. 치솟는 인기만큼 그의 별명도 많다. 해설할 때마다 튀어 나오는 '역회전'의 사투리 '여괴전' 때문에 붙은 '여괴전 형님', 현란한 입담에서 나온 '입 당구', 소싯적 장타 능력을 빗댄 '무등산 폭격기' 등등. 김현석은 PBA 7차 투어부터 와일드카드로 프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데뷔전인 128강에서 당구 황제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을 격파하면서 '입 당구'가 아닌 '손 당구'의 매운맛을 당구 팬들에게 선보였다.

어깨너머 '훔쳐보기'로 당구 독학

국제식 대대 입문 6개월 만에 우승

김현석은 얼떨결에 당구를 만났고 의지와 상관없이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당구장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연년생인 3형제 중 막내인 김현석은 두 형이 당구장에서 살다시피해 저녁 식사 때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 당구장을 들락거렸다. 형들이 공을 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본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치면 당구공이 끌리고 저렇게 치면 밀어치는 게 되는 걸 깨우치는 순간부터 당구에 흥미가 생기고 눈을 뜨기 시작했죠. 10개월 만에 4구 기준 400점까지 올라갔습니다. 당구가 저하고 맞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3쿠션을 친 그는 20대 초반부터 전남 광주시에서 나름 알아주는 강자로 올라섰다. 이른바 내기 당구인 '죽방'의 세계에서도 광주시를 주름잡았다. 그래서 '광주싹걷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선수로 활약할 때는 뛰어난 장타 능력으로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으로 이어졌다.

프로당구 선수 김현석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늑막염 수술 경력 때문에 군대를 면제받은 김현석은 당구에 더 매진했다. 그리고 24살에 KBC광주방송이 주최한 '토요당구'라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에 광주당구연맹이 저를 영입하려고 대회 우승자는 무조건 선수 등록을 해야 한다는 거짓말을 섞어서 밀어붙였는데 순진했던 저는 그 말을 믿고 바로 선수가 된 거죠. 이전까지는 당구가 좋아서 쳤을 뿐이지 선수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놀라운 사실은 김현석이 국제식 대대를 처음 접한 때가 선수 등록을 한 후라는 점이다. 중대에서 치는 3쿠션은 국제식 대대와는 완전 다른 수준이다. 하지만 그는 국제식 대대를 접한 지 6개월 만에 당시 제법 큰 규모의 전국대회인 '허리우드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현석의 당구 재능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당구 스승은 따로 없었습니다. 대부분 어깨너머로 훔쳐보고 배웠죠. 당시만 해도 고수들은 자신의 당구 기술을 노출하지 않으려 했고 누가 그걸 뒤에서 훔쳐보기라도 하면 역정을 낼 정도였어요. 저도 숱한 구박을 받고 심지어 욕까지 들었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수들의 당구를 내 것으로 만들어 왔죠."

선수 생활의 시작은 화려했지만 이후 10여년 동안 김현석의 성적은 두각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권태기도 왔다. 한창 팔팔한 나이에 매일 당구장에서 연습하는 일상에 지친 것이다. 29살에 새로운 일탈을 도모했다. 당시 유행한 칵테일바를 열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년 만에 접었다.

"이후에 작은 형과 물류배달 사업을 같이 해 1년 반 정도 몸이 부서져라 부딪쳤지만 결국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당구였다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그때부터 당구에 대한 열망이 새롭게 솟아나 다시 열심히 공을 굴렸습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006년 MBC-ESPN 큐스포츠 우승. 월드컵 대회 모습. MBC스포츠 플러스 채널에서 신승대 캐스터와 PBA 투어 해설을 하는 모습.

공전의 히트를 친 사투리 해설

미녀 캐스터 김선신과 환상의 조합

새로운 각오로 당구에 전념하면서 김현석은 매년 1차례 우승을 기록하는 등 탄탄한 성적을 쌓아올렸다. 동시에 당구와 관련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당구 인터넷방송의 해설자로 나선 것이다.

김현석이 처음 당구 해설자로 등장한 것은 10여년 전. 당구 미디어 및 용품 유통 전문업체인 코줌코리아(파이브앤식스의 전신)가 세계캐롬연맹(UMB)이 주최한 당구 경기를 인터넷방송으로 생중계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진행자나 해설자가 없이 경기 장면만 화면으로 나갔다.

"그때 인터넷방송이 유료모델이었는데 경기 화면만 나가니까 뭔가 심심했던 거죠. 그러던 차에 코줌코리아의 해설 요청이 들어왔고 저도 뭔가 생동감이 넘치는 해설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습니다. 공중파가 아니어서 사투리가 제약을 받지도 않았고요."

김현석의 인터넷방송 해설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구수한 입담과 유머가 곁들여진 해설에 박수를 치기도 했지만 진한 사투리 억양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교차했다. 그래도 입소문이 나면서 공중파인 MBC스포츠플러스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당시 PD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사투리 억양을 우려하자 오히려 당구 방송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겁니다. 정적인 방송 분위기의 틀을 깨고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방송을 만들자고 격려해줬고 저도 흔쾌히 응하게 됐죠."

그가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등장하자 팬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교수님 스타일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당구 해설이 아니라 유쾌한 만담처럼 생기가 넘치는 해설에 열광한 것이다. 또 다른 '신의 한 수'는 명품 콤비로 떠오른 미녀 아나운서 김선신을 캐스팅한 일이다. '베이스볼 투나잇' 진행자로 유명한 김선신을 당구 방송 진행자로 맡기자는 아이디어도 김현석이 제안했다.

"방송 진행을 같이 한 신승대 아나운서 팀장한테 제가 김선신을 추천했습니다. 프로야구 방송에서 평소 톡톡 튀는 센스와 발랄함을 눈여겨봤는데 저하고 잘 맞을 것 같다고 했죠. 신 팀장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승낙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김선신 아나운서가 당구를 전혀 모른다고 걱정하기에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안심을 시켰어요."

프로당구 선수 김현석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신의 한 수는 절묘하게 통했다. 김현석과 김선신은 오랜 콤비처럼 '티키타카'식 만담을 펼쳐내면서 당구 방송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김선신이 김현석을 향해 놀리거나 곤란한 질문을 던져도 김현석이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과정이 팬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선수 입장에서 전해주는 심리적 상태에 대해서도 구수한 입담으로 생생하게 전달한 것이 주효했다.

방송 중에 튀어나오는 김현석의 사투리는 심지어 유행어가 됐다. 당점을 반대 방향으로 주는 '역회전'을 전라도 사투리로 발음한 '여괴전', 당구 힘이 약할 때마다 나오는 '야개요'가 대표적이다.

"발음을 의식하면 저도 표준어가 가능하죠. 한 번은 해설 중에 제가 '약해요'라고 표준어를 쓰자 인이어를 통해 담당 PD가 '시청률 떨어지게 왜 그러세요. 하던 대로 하세요'라고 핀잔을 주더라고요."

승리 확률 1%의 기적 보인 데뷔전

"당구 인생 2막, 팀 리더 맡고파"

김현석은 PBA 출범 당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 광주광역시 체육회 소속으로 안정된 연봉을 받으면서 지역을 빛내는 활약에 큰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전국체전에서 광주광역시 대표로 출전해 그동안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를 쓸어 담았다.

그가 갑자기 PBA로 전향한 계기는 체육회의 사실상 결별 통보였다.

"지난해 연말께 체육회에서 전국체전 감독직을 제의했어요. 사실상 소속 선수를 그만두라는 의미죠. 감독직에 대한 연봉 협상이 아예 없었으니까요. 보수도 없지만 저는 계속 선수로 활동하고픈 염원이 컸죠. 고민하던 중에 올해 1월초에 타 지역 체육회 선수를 광주 소속으로 데려온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PBA 참가를 결심했습니다."

프로당구 선수 김현석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PBA 와일드카드를 받은 그는 첫 관문부터 난관에 빠졌다. 랭킹이 없는 그로서는 128강 첫 상대가 랭킹 상위권의 강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첫 상대가 하필이면 PBA 최강자인 쿠드롱이었다.

김현석은 일단 2주일 동안 공인구인 헬릭스 적응에 매달렸다. 주변의 걱정도 뒤따랐다. 심지어 아들은 상대가 쿠드롱으로 정해지자 "질 게 뻔한데 왜 나가셨냐"라고 힐문하기도 했다.

"파트너인 김선신 아나운서는 PBA로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만류하더라고요. 과거에 무등산 폭격기였던 '신비주의'로 남는 게 낫지 괜히 나가서 창피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데뷔전을 앞두고 지더라도 창피하지 않게 지자, 1세트라도 가져 오면 성공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김현석조차 쿠드롱과의 데뷔전에서 승리할 확률은 1%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그 누구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역전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지난 1월 19일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LPBA 챔피언십' 128강에서 세트스코어 3대 1로 쿠드롱을 꺾은 것이다.

"첫 세트에서 팽팽한 대결이 진행되자 '잘하면 이길 수도 있겠다'라는 희망이 보였다가 막상 패하자 '그래 쿠드롱이었지'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승패보다는 내 배치만 신경을 쓰자고 다짐했는데 막상 2세트를 여유롭게 이겼어요. 그때 '오늘 내가 할 일을 다 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훨씬 경기가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유가 생기니 경기 흐름이 좋아졌고 덜컥 제가 이겨버린 거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여괴전 형님'의 승리에 당구 팬들은 환호했다. 그의 아내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들은 기쁨에 겨워 사과를 했다. 그의 질주는 32강에서 멈췄지만 팬덤을 등에 업은 그의 활약은 새로운 PBA 흥행 카드로 떠올랐다.

"데뷔전의 승리가 저에게는 당구 인생의 2막이 열린 셈입니다. 앞으로 좋은 활약을 펼쳐 팀의 리더를 맡아 보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가족과 같은 분위기의 팀 화합을 주도하는 리더십으로 후배들을 이끌고 싶습니다."

정완주 기자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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