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감시] 한국 저명 심장학자 논문 2건 철회..."학계 관행" 옹호 주장도

고재원 기자 ,박정연 기자 2023. 2. 10. 15: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철회가 된 논문. 연세의학저널 홈페이지 캡쳐

박희남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교신저자와 2저자로 참여한 논문 2건이 지난 1월 철회된 것으로 확인됐다. 교신저자로 참여한 논문은 ‘통계학적 넌센스’, ‘뒤섞인 데이터’ 등을 이유로, 2저자로 참여한 논문은 거의 동일한 내용의 논문이 타 학술지에도 출판된 것이 확인되며 철회됐다.

박 교수가 지도교수였던 학생을 비롯한 타인의 제보가 이뤄지면서 이들 논문 철회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논문 철회 사실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먼저 공론화됐다. 커뮤니티에서는 "한국 학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 "박 교수의 잘못이 아니며 내부 고발자가 누군지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제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9일 논문 감시 사이트 ‘리트랙션워치’에 따르면 2015년 연세의학저널에 게재된 ‘eNOS3 Genetic Polymorphism Is Related to Post-Ablation Early Recurrence of Atrial Fibrillation’라는 제목의 논문이 지난달 19일 철회됐다. 학술지 측은 “논문이 출판된 후 얻은 정보를 통해 우리는 최근 (이 논문과 관련된) 과학적 부정행위 문제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논문 인용색인 데이터베이스 ‘웹오브사이언스’에 따르면 이 논문은 6차례 인용됐다. 박 교수는 이 논문의 교신저자로 연구에 참여했다. 

2저자로 참여한 논문은 대한심장학회지에 2010년 4월 게재됐다. ‘Serological predictors for the recurrence of atrial fibrillation after electrical cardioversion’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이 논문은 유럽심장학회지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출판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논문의 서론 문구는 거의 동일하고 결론 부분에서 약간의 수정이 있다는 의견들이 연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시됐다. 대한심장학회지 측은 지난달 11일 “독자로부터 이 논문이 두 번 출판됐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교신저자는 중복게재 책임을 인정하고 논문 게재 철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두 논문 모두 제보로 인해 철회까지 이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2저자로 참여한 논문은 박 교수가 지도교수였던 한 학생이 2022년 8월 유럽심장학회지에 제보했다. 2022년 11월엔 대한심장학회지에 제보했다. 교신저자로 참여한 연구 역시 이 학생이 제보한 것으로 보인다. 

○ 논문 철회 소식에 박 교수 옹호 댓글 이어져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한 네티즌은 “이 논문들이 왜 심각한 연구 윤리 문제를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 학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 누가 이 유망하고 뛰어난 교수를 학술지와 언론에 제보했나”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또다른 네티즌은 “그렇다. 한국 학계에서는 이중 투고와 출판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다”며 “박 교수의 잘못이 아니다. 리트랙션워치의 독자들은 이런 한국의 학문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왜 이 저명한 심장학자를 비난하나. 우리는 이 문제를 제보한 자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 교수의 이력을 열거하며 “박 교수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심장학자”라고 밝히는 등 수 많은 옹호 댓글들이 달렸다. 

이같은 주장에 대한 갑론을박도 이어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그렇지 않다. 내부 고발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며 “논문이 적절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에 집중해야지 누가 혹은 왜 제보했는지는 중요치 않다”고 덧붙였다. 

○ 국내외 학술지 동시 논문 출판이 한국 학계 관행?

의과학계 관계자들은 이번 논문 철회가 과학계 관행 때문에 생긴 문제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국내 학술지의 경우 출판할 논문의 수가 적은 경우가 많아 연구자들에게 국내 학술지 투고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국내 학술지와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동시 투고하는 사례도 생긴다. 이 같은 관행은 온라인 출판이 활발하지 않던 시기에 이어지던 문화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철회 건은 기존 관행과는 차이가 있다. 국내외 학술지에 동시에 논문을 투고할 때 국내 학술지에는 '국문'으로, 해외 학술지에는 '영문'으로 투고하는 게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국내외 학술지에 영문으로 동시 투고할 경우 그림이나 내용 등을 일부 바꿨다. 이번에 철회된 논문은 국내와 해외 학술지에 영문으로 출판됐음에도 내용에 큰 변화가 없었다. 

대한의학회 의학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논문 철회 대상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중복게재 기준은 가설 중 인구집단 관련 독립 및 종속 변수가 거의 동일할 때, 연구 재료와 실험동물, 대상자 90% 이상이 동일할 때, 자료 수집과 분석, 제시 방법이 같거나 거의 같을 때, 결과가 양이나 질 측면에서 동일할 때 등이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논문이 철회될 정도면 내용이나 그림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라며 "최근 학계에서는 국내와 국외 학술지 동시 투고는 물론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이번 논문 철회건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을 통해 박 교수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리트랙션워치 측 역시 박 교수에게 연락했으나 답이 없다고 밝혔다. 

[고재원 기자 ,박정연 기자 jawon1212@donga.com,hess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