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학폭, 가해자도 피해자도 '상처'만 남는다[노경열의 알쓸호이]

배우근 2023. 2. 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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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애가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데…, 보시다시피 아이가 아직 너무 작아서 혹시나 큰 애들에게 치이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요.”

190㎝는 됨직한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아빠와 함께 온 7세 아이, 그 아이는 하얀 피부에 빛나는 눈을 가진, 천사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아버지와는 달리 또래 아이들보다, 아니 적어도 체육관에서 무술을 배우는 또래 아이들보다는 확실히 작았다.

체구가 작다고 무조건 약한 건 아니지만, 상대의 큰 덩치에 주눅이 드는 건 성인 사이에서도 비일비재한 일. 특히 뉴스 등을 통해 학교폭력(이하 학폭) 문제가 심각하게 떠오른지 이미 몇년 째다. 그래서 아빠는 아이에게 자신을 지키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주기 위해 무술 체육관을 찾아온 것이다.

지난해 말 시작한 OTT 드라마 ‘더 글로리’의 인기가 대단하다. 배우진들의 연기력도 호평이지만, 스토리가 충격적이라는 감상평이 많다.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 일당들에게 잔혹한 학폭을 당한 주인공이 20여 년이 지나 성인이 된 뒤 복수하는 이야기인 데다 학폭을 표현하는 수위가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에이, 요즘 애들이 아무리 잔인해진다 해도 저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며 고개를 젓겠지만, 기자 경력이 있는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드라마 소재로 쓰인 범죄는 항상 현실이 더 잔혹했다. 그만큼 학폭은 이제 드라마로 마치 딴 세상 이야기처럼 봐넘기기만 할 문제가 아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심각한 범죄인 것이다.

학교 폭력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학교다. ‘10대 학생 즉, 아직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나이의 아이들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공간’에서 폭력이라는 심각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고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학교의 학생들은 아직 제대로 모른다. 누군가를 신체적·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이며 얼마나 큰 댓가를 자신이 치러야 할지 이들은 아직 제대로 모른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누군가를 쉽게 괴롭히고 그 방법과 수위는 성인 이상으로 다양하고 높다.

필자는 호신술을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호신술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늘 고민한다. 학폭은 주로 한 사람을 대상으로 수 명에서 십여 명의 집단적으로 가하며, 만약 힘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면 괴롭히는 방법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호신술은 언제든 ‘다른 이를 향한 폭력’ 기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호신술을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나쁜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중에도 글의 첫머리에 밝힌 예처럼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무술 체육관을 찾는 부모님들은 점점 늘고 있다.

그 때마다 부모님들께 “상대의 위협적인 폭력 하나하나에 대응하는 기술을 가르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학폭의 경우 대부분 괴롭히는 쪽은 구성원이 다수입니다. 호신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늘 함께 어울려 다닐 수 있도록 아버님, 어머님께서 아이를 계속 도와주시고 지켜봐주셔야 합니다”라고 항상 얘기한다. 호신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호신술을 사용할 일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 이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다.

드라마에서는 보통 가해자들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벌을 받게 되고, 피해자였던 주인공은 복수에 성공한다. 시청자들은 권선징악의 결과를 보며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더 글로리 역시 시즌2에서 이런 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차갑다.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을 뿐, 가해자도 피해자에게도 ‘글로리(영광)’는 없다.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노 관장은 기자 출신으로 MBN,스포츠조선 등에서 10년간 근무했으며, 절권도는 20년 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 강남에서 JKD KOREA 도장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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