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링클라이밋나우] 빌 게이츠는 왜 '소 트림' 줄이는 연구에 투자했나

고재원 기자 2023. 2. 1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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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호주의 스타트업 ‘루민8’에 1200만달러(약 151억 원)를 '시드 투자(초기투자)'했다. 데이터 제공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미국 내 이뤄지는 스타트업 대상 시드 투자의 평균액은 150만 달러(약 18억 원) 규모다. 다른 스타트업들에 비해 약 8배 많은 시드 투자를, 그리고 빌 게이츠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이 이 스타트업에 쏠렸다. 

이 스타트업의 정체는 메탄을 내뿜는 ‘소 트림’을 줄이는 기술을 연구하는 기후기술 스타트업이다. 2021년 6월 창업한 이후 이번 시드 투자를 포함해 약 1770만 달러(약 223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목표로 설정한 사업의 실현 가능성과 유망성, 필요성을 투자자들로부터 높이 인정받은 것이다. 

메탄(CH₄)은 무색무취의 가연성 기체다. 정사면체 중심에 탄소가 있고 정사면체의 꼭짓점에 수소가 있는 특유의 분자 구조로 태양에서 지구로 전달되는 열에너지를 잘 흡수한다.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질의 분해 과정을 통해 주로 생산되며 화석연료 사용, 폐기물 배출, 가축 사육, 바이오매스의 연소 등 다양한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 주범 중 하나로 메탄을 꼽는다. 대기 중에 포함된 메탄은 이산화탄소의 200분에 1에 불과하지만 온실가스 효과는 이산화탄소보다 최소 약 20배, 최대 약 80배까지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다. 

2021년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메탄은 현재의 지구온난화에 약 30% 정도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월 롭 잭슨 미국 스탠퍼드대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미국 전역의 가스레인지에서 방출되는 메탄이 미치는 지구 온난화 영향이 휘발유 자동차 약 50만대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끼치는 영향과 같다는 분석을 국제학술지 ‘환경 과학과 기술’에 내놓기도 했다.

루민8이 연구 중인 소 트림에서 발생하는 메탄양 줄여주는 사료 첨가제. 루민8 제공

루민8은 소 트림에서 발생하는 메탄의 양을 줄여주는 사료 첨가제를 개발 중이다. 이 첨가제는 붉은색 해초인 홍조류를 상당량 함유하고 있다. 이를 소에게 먹일 경우 트림과 방귀 등을 통해 배출되는 메탄의 양을 8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소는 메탄의 주 발생원으로 꼽힌다. 전 세계 메탄 배출량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루민8은 자사 실험 결과 이 사료 첨가제를 소에게 먹일 경우 소에서 나오는 메탄가스가 최대 95% 감소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루민8은 이번에 개발한 사료 첨가제와 관련해 "우리는 계속해서 우수한 실험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면서 “합리적 가격대로 상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984년부터 2020년까지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의 농도를 분석했다. 세계기상기구 제공

빌 게이츠가 꽤 큰 금액을 루민8에 투자한 것은 증가하는 대기 중 메탄량 때문이다. 세계기상기구(WMO)은 지난해 10월 발간한 18차 온실가스 연보에서 “지난해 대기 중 전 지구 온실가스 농도가 최대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메탄 농도가 1908ppb (물질의 농도 단위로 1ppb는 10억 분의 1)로 전년보다 18ppb 증가하는 등 40년 전 체계적인 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평균 증가율인 연간 9.2ppb와 비교해도 두 배에 가깝다. 

국내 상황도 동일하다. 지난해 7월 공개된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의 ‘2021 지구대기감시보고서’에 따르면 메탄은 10년 전과 비교해 약 2.2배 증가하며 1984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 사회는 부랴부랴 메탄 배출 감축에 나서고 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전 세계 100여 개국 정상들이 2030년까지 메탄 방출량을 30% 감축하는 데 합의했다. 이른바 ‘국제메탄서약’이다. 한국도 이 서약에 서명했으며 2월 기준 참여국은 150여개국으로 늘었다. 

일부 국가들은 아예 ‘메탄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은 2024년부터 t단 메탄세를 900달러(약 113만원)를 부과하고 2026년에는 1200달러(약151만원)까지 인상할 예정이다. 1000만 마리 이상의 소를 사육하는 뉴질랜드 역시 2025년부터 가축이 배출하는 메탄에 세금을 매기기로 발표했다. 이런 방향성에 기후기술의 경제성 확보가 예견되며 루민8과 같은 기후기술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과학자들은 메탄 배출량 감소가 빠른 기후변화 대응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메탄의 대기 중 체류기간은 약 9~10년 정도다. 이산화탄소는 100년이 걸리는 데 반해 짧다.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더 큰 기체를 더 빠른 시간 내 대기에서 없앨 수 있다는 의미다. 

상업화 수준은 아니지만 국내외에서 메탄 제거나 활용 기술들도 대거 개발 중이다. 최근 반년만 살펴보더라도 지난해 11월 이승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연구소장 연구팀은 메탄을 고부가가치 바이오화학 소재로 바꿔주는 유용 미생물을 개량하는 기술을, 지난해 10월에는 이상엽 연세대 교수 연구팀이 메탄을 에너지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촉매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1년 보고서를 통해 “대기 중 메탄량을 줄이는 것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최우선 과제”라며 “국제메탄서약의 목표를 이루면 2015년 파리 기후협정에서 명시된 지구 온도 상승 폭 제한 목표인 1.5도를 지켜낼 수 있다”고 밝혔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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