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6도 추위, 여진 공포…기댈 건 모닥불과 구호음식 뿐
‘강진 영향권’ 남부도시 이디나 르포
“지금은 일상을 상상할 수 없네요.”
텐트 사이로 건물 재가 날리고, 재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피난민을 위한 임시텐트에서 만난 25살 튀르키예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에게 ‘일상이 복귀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대지진으로 큰 상처를 받은 튀르키예인들의 마음속에 일상은 여전히 ‘저 멀리’ 있는 듯 보였다.
출발 시간이 뒤로 밀리고 밀리기를 거듭한 끝에 <한겨레> 취재진을 태운 비행기는 9일(현지시각) 새벽 2시 이스탄불을 출발했다. 그곳에서 두 시간을 날아 6일 새벽 발생한 규모 7.8 강진의 영향권 아래 든 남부 도시 아다나에 도착했다. 진원인 가지안테프에서 서쪽으로 200㎞ 정도 떨어졌기에 도시는 그리 큰 피해를 입진 않은 모습이었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건물 사이로 이따금 폭삭 주저앉은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서둘러 호텔에 들어가 짐을 푼 뒤 새벽 6시 어스름한 새벽 공기를 뚫고 거리로 나왔다.
시내를 남북으로 가르는 세이한강 서안에 위치한 귀젤얄르 시장엔 나흘 전 지진이 발생한 뒤 거처를 잃어버린 이들을 위한 임시 텐트가 설치돼 있다. 아직 이른 아침인 탓인지 이곳에 모여든 주민들은 곳곳에 커다란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구호물품으로 온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 대학생은 “우리 집은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지만 여진이 무서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첫날 밤은 어쩔 수 없이 차에서 지냈는데 너무 추웠고, 지금은 비교적 지진 피해에서 온전한 이웃들의 집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 발생 나흘째인 9일 오후로 접어들며 사망자 수는 튀르키예 1만2873명, 시리아 3162명을 더해 1만6천명을 넘어섰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악의 인명 피해다. 이날 새벽 4시(한국시각 오전 10시)로 생존자 구조에 결정적인 ‘초기 72시간’(이른바 골든 타임)이 지나며 생존자 구조의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이다. 영국 노팅엄트렌트대학의 자연재해 전문가 스티븐 고드비는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생존율이 24시간 안에는 평균 74%인 반면 72시간이 지나면 22%로 떨어지고 5일이 지나면 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희망이 사라진 재해 현장에선 좌절과 분노가 들끓었다. 튀르키예 남중부 내륙 도시 말라트야(말라티아)에서 구조를 돕고 있는 전직 언론인 외젤 피칼은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지면서 잔해 속에 갇힌 생존자들이 동사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에이피>(AP) 통신과 한 전화 통화에서 “말라트야에는 이제 희망이 없다. 잔해에서 살아서 구조되는 이들이 더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위 때문에 수작업으로 건물 잔해를 치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지역에서는 수습된 주검들은 일단 담요에 덮인 채 바닥에 나란히 놓이고 있다.
시리아 상황도 나을 게 없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데다 지진까지 겹친 북부 알레포에서는 주민들이 공포 속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현지 주민 호비그 셰리안(24)은 “내전 중에는 전투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피란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지진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우리가 모두 죽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시리아 국영 통신은 지금까지 모두 29만8천명이 집을 잃었고,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대피소 180곳이 설치됐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아다나의 대학생도 “빵이나 수프, 비스킷 같은 구호물품이 들어오지만 정부가 아닌 시민과 이웃들의 도움”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트위터를 통해 구호나 지원을 요청하려고 해도 가로막혀 어렵다”며 “대통령은 지진이 났을 때 바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경찰은 트위터에 올라온 대통령 비판에 곧바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대지진 이후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튀르키예 정부는 시민들의 트위터 접속을 제한하고 정부를 비판한 이들을 잡아 가뒀는데 이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비교적 피해가 덜하다고는 하지만, 시장으로 가는 길에 자리한 12층짜리 상가 건물은 폭삭 주저앉은 모습이었다. 잔해를 뒤지며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굴착기가 잔해를 파헤치며 피어오르는 연기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피운 모닥불의 매캐한 연기가 주변을 감쌌다. 현장에 있던 시민 레이한 악쿠스는 “건물이 무너질 때 9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목숨을 건진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그래도 오늘 아침 사흘 만에 한 사람이 살아 나왔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현지 방송은 지진 피해자 8천여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8천명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날 밝힌 구조자 수였다. 며칠 더 시간이 지난다 해도 이 수치가 크게 늘어날 것 같진 않아 보였다.
2층짜리 건물 두 동에 불과한 작은 아다나 공항은 이날 새벽에도 튀르키예 곳곳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와 외국에서 건너온 구호단체 직원들로 북적였다. 튀르키예광산협회(TTK) 소속 자원봉사자들은 두꺼운 패딩 위에 형광조끼를 챙겨 입고 나무 자루 곡괭이를 손에 든 채 바삐 움직였다. 일부는 빵과 음료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이들은 곧바로 인근 하타이 지역으로 들어가 구조에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아다나/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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