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호광장의 심리툰과 함께 - 세상과 나 바라보기] 14. 대접 받고 사세요

팔호광장 2023. 2.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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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에겐 단호하게 나 자신을 소중하게
오랜시간 가족의 폭력·폭언 시달려
불안·죄책감 가중 ‘을의 입장’ 어른으로
상대방 눈치보며 항상 전전긍긍 …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권리 없어
존엄성·인격 침범시 적절한 ‘화’ 내야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 끊을 용기 필요

명절 연휴가 끝나고 1∼2주간은 유독 가족에게 상처받은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가족 간의 재산 다툼처럼 갈등의 원인이 명확한 경우는 차라리 낫습니다. 가족에게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 오랜 시간 가족을 위해 희생했음에도 고맙다는 말은커녕 비난만 받으면서도 그 관계를 어쩌지 못해 억울한 상황을 이어가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A씨는 그런 가족이 늘 삶의 숙제입니다.

어린 시절 A씨의 아버지는 어딜 가나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정 반대였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괜찮다가도 술을 마시거나 불쾌한 일이 있을 때 가족들은 늘 긴장해야 했습니다. 가족들이 자신을 가장으로 대우해 주지 않는다며 폭언을 하는 것은 물론 심하면 폭력까지 행사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버지의 술 주정에 지친 어머니는 늘 자녀들에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아버지를 비난했습니다. 뭔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아버지 때문에 힘든데 너까지 왜 엄마를 힘들게 하냐며 집을 나간다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반복해 A씨는 늘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늘 조금이라도 엄마를 도우려고 노력했고, 아버지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게 된 A씨는 가족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조금은 그런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요. 자신과는 달리 밝고 호탕한 모습에 끌린 남편은 늘 자신감이 넘쳐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 보이는 그 남자가 자신을 만나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문제는 다툼이 있을 때였습니다. 평소 그렇게 잘해주던 그 사람은 사소한 갈등에도 헤어지자고 말하며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폭언, 폭력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힘들었던 가정사도 그 상황에서는 나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악용되었습니다.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 문제가 많다는 말에 A씨는 속상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혹시라도 그 사람이 떠나가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늘 잘못을 사과하기에 바빴습니다. 늘 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은 나였고, 기분이 좋을 때는 한없이 다정한 그였기에 평소에도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늘 전전긍긍해야만 했습니다. 남들은 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가 유독 나에게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책임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A씨의 아버지와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일까요? A씨는 정말 그들에게 많은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랜 시간 반복되어 온 A씨의 인간관계에는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늘 을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대한다는 것이지요. 비슷한 일은 직장에서도 일어납니다. 늘 남들보다 많은 업무를 도맡아 희생하면서도 혹시라도 실수를 하면 비난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시달립니다. 직장 상사나 다른 직원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늘 눈치를 봅니다.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그 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 나에게 잘 하는 것은 누구라도 가능한 일입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힘들고 불쾌할 때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함부로 할 권리는 없습니다. 친구, 가족, 평생을 함께할 부부라면 더 그렇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를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은 내 책임이 됩니다. 가스라이팅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나는 계속 그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관계를 빌미로 당신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수치심을 느끼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존엄성과 인격이 침범 받는 순간 우리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상대가 가족이라 할지라도요. 나는 그런 욕설을 들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폭력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우할 수가 있냐고 화를 내야 합니다. 감정을 잘 조절한다는 것은 무조건 참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적절한 감정을 적절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내가 보호받아야 할 경계를 명확히 하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 나를 보호하는 것이 ‘화’의 기능입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관계를 끊어도 좋습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관계는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언제든 그 사람을 떠날 수 있어야 대등하게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우리는 용기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용감하게 맞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접받고 사세요. 당신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만큼 남들도 당신을 그렇게 대우할 것입니다. <끝>

팔호광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심리툰 작가

*A씨의 이야기는 여러 사연을 반영하여 사연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각색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그동안 ‘심리툰과 함께 세상과 나 바라보기’를 애독해 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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