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악플’이라는 바이러스

이영빈 기자 2023. 2.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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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농구의 대들보 박지수(25)에게 지난여름 갑자기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판정을 받은 뒤 3~4개월 동안 훈련은 고사하고 집 밖조차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박지수는 ‘악플’로 선수 생활 내내 속앓이를 했다. 주된 내용은 밑도 끝도 없는 인신공격이었다. 2020년엔 농구를 그만두겠다는 폭탄 발언까지 한 터였다. 올 시즌도 절반가량이 흐른 지난해 12월 겨우 코트를 밟았다. 과거와 달리 몸놀림이 민첩하지 못했고, 몸이 덜 만들어진 탓인지 지난 1일 손가락을 다쳐 결국 시즌을 접었다. ‘50년에 한 번 나오는 재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박지수가 다름 아닌 마음의 병과 씨름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악플은 2000년대 가정용 컴퓨터와 함께 등장해 사회의 고질병으로 뿌리를 내린 지 오래다. 최근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 만큼이나 그 해악도 커지는 중이다. 악플이 유명세라는 건 옛말이다. 과거엔 기사 속 유명인에게만 악플이 달렸지만, 요즘은 다양한 경로로 일반인도 그 먹잇감이 된다.

개인 사진이나 글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와 유튜브에 뿌려져 비웃음거리가 되는 건 예삿일도 아니다. 악플이 주변으로 돌아와 지인과 가족에게도 알려지고 고통을 당한다. 악플을 다는 이들은 ‘유쾌한 장난’ 정도로 여기지만 피해를 당한 이들은 큰 상처라고 토로한다. 소셜미디어 주 사용자인 10~20대는 언제나 누구든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작은 일에도 민감하다.

마주보면 하지 못할 독한 말도 익명의 비대면 세상에서는 범람한다. 얼마 전 만난 한 음식점 사장은 “간혹 ‘한 입 먹고 버렸습니다’ 같은 배달 앱 리뷰를 읽을 때면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온종일 힘들다”고 말했다. 한 대학생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역겨운 얼굴로 사는 기분은?’이라는 DM(다이렉트메시지)을 받았다고 했다. 거울을 볼 때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고 한다.

악플은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진원이 어딘지 알기 힘들고, 전염성이 강해 이곳저곳 자유자재로 옮겨다닌다. 누군가는 접촉해도 별 탈 없이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심하게 앓는다. 그렇게 감염돼 홀로 아파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일상이 차츰 부서져 가는데도 예방책은 전무하다. ‘악플은 나쁘다’ 같은 캠페인이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착하게 살자’라는 문구만큼 공허하게 느껴진다. 거의 최초이자 유일한 제재 수단이었던 스포츠·연예 기사 댓글창 폐지는 인스타그램·유튜브로 고스란히 옮겨가 역시 큰 효과가 없었다. 피해자들은 법적 대응으로 마음을 풀어보려 한다. 하지만 소송을 준비하는 도중 악플들을 다시 하나하나 읽으며 상처에 소금을 뿌려야 한다.

‘이 정도로는 안 옮아’ ‘나는 안 걸려’라는 생각이 바이러스의 확산세를 키우는 건 아닐까. 역시 ‘이 정도는 악플 아니야’ ‘나한테는 달릴 일 없지’라는 안일함과 무관심이 그 세력을 키우는 건 아닐까. 악플에 익숙해져버린 ‘집단 면역’ 사회만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을 후벼파는 말에 내성이 생기는 사람은 없다. 그저 참고 견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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