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공중을 팔아라” 창의적 생각이 만든 맨해튼 스카이라인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2023. 2.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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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스카이라인을 찾는다면 아마도 뉴욕 맨해튼일 것이다. 맨해튼섬의 땅은 평평하고 주변에 있는 강물은 수평으로 평평하다. 주변의 수평적 구도에 엘리베이터 덕분에 수직으로 성장한 건축물은 강한 수평과 수직의 대비를 구성하면서 인상적인 스카이라인을 완성한다. 건물들은 각각 지역에 따라서 높이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점은 수평 지면에서 수직으로 자라난 모양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환경을 구성하는 생명체는 크게 식물과 동물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 동물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내 주변의 공간적 환경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식물은 제자리를 지킨다. 그래서 우리의 환경은 바위나 흙 같은 무기질과 살아있는 식물로 구성된다. 이때 식물의 형태적 특징은 ‘자라난다’는 점이다. 이끼나 넝쿨 식물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식물은 자라날 때 땅에서 위로 자라난다. 식물은 광합성을 해야 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햇빛을 받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식물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우리의 의식에는 살아있는 생명체는 지면에서 위로 수직 방향으로 자라나는 것이라고 인식되어있다. 그래서 땅에서 건물이 수직으로 쭉쭉 자라나는 모습을 한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여타 도시의 스카이라인보다도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뉴욕의 스카이라인의 특징은 ‘공중권’이라는 독특한 건축 법규 때문이기도 하다. 공중권은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20층까지 지을 수 있는 구역에 5층짜리 건물을 갖고 있는 건물주가 있다면 더 지을 수 있는 15층에 해당하는 권리를 타인에게 팔 수 있다. 15층 공중권을 사들인 건축주는 15층만큼의 연면적만큼 더 높게 지을 수 있다. 다른 건물의 공중권을 더 사들인다면 더 높은 건물 건축도 가능하다.

뉴욕에는 ‘펜스테이션’이라는 오래된 기차역 건물이 있었다. 그런데 뉴욕은 이 고색창연한 건물을 부수고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라는 체육관을 지었다. 근대 건축 유산인 서울역을 부수고 장충체육관을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화가 난 시민들은 향후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공중권’이라는 법규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은 보존해야 한다. 문제는 무작정 보존만 강요하면 그 땅을 소유한 사람의 재산권이 침해받게 된다. 그런데 공중권 덕분에 건축주는 기존 건물을 유지하면서 내 건물 상부에 있는 남은 용적률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개발업자들은 자신의 건물을 더 높게 짓기 위해서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서 그들에게 공중권을 산다. 최근 뉴욕의 57번가에는 초고층 고급 주거 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건물은 모두 부동산 개발 회사들이 맨해튼의 오래된 건축물의 공중권을 매집했기에 가능한 디자인이다. 덕분에 이 건물들은 주변보다 수십 층이나 높고, 센트럴파크 뷰를 가지게 되었으며,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다. 펜슬타워라고 하는 초고층 아파트는 완성되기 7년 전부터 개발 회사가 여러 곳에서 공중권을 매집하는 노력 끝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최근 57번가 초고층 건물의 맨 꼭대기 세 층을 엮은 펜트하우스가 3000억에 판매되었다. 부동산 감정가는 수백억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비싸게 팔린 것일까? 그 이유는 그림 값이 비싼 것과 마찬가지다. 비싼 유명 화가의 그림을 사는 것은 세금을 피할 수 있고, 언제든지 그 그림을 비싸게 사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맨해튼의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아파트는 언제나 사줄 사람이 전 세계에 있다. 이 집이 비싼 또 다른 이유는 뉴욕의 독특한 세금 정책이다. 뉴욕은 별장 개념으로 집을 사서 보유할 경우 보유세를 면제해준다. 아무리 비싼 집을 소유해도 보유세를 내지 않다 보니 세계 부자들이 뉴욕의 고가 아파트를 재산 은닉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뉴욕은 이제 땅값이 너무 비싸고 개발이 다 되어서 비어있는 큰 땅이 거의 없다. 땅이 커지면 건물이 뚱뚱해지고 그럴수록 안쪽은 채광과 통풍이 안 되어서 주거 용도로는 불리하다. 반대로 땅이 좁아지면 아파트를 지을 때는 유리하다. 만약에 좁은 땅에 높게 지을 수만 있다면 주변 경치를 내려다보는 고가 아파트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뉴욕의 개발 회사는 남아있는 좁은 땅에 공중권을 사서 높게 지어서 센트럴파크 뷰를 가지는 아파트를 만들어서 비싸게 팔아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 생각은 예전부터 했을 텐데 왜 지금에야 초고층 아파트가 많이 지어질까? 건축구조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좁고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지어지는 건물은 건물의 가로 폭에 비해서 세로가 엄청나게 길다. 이게 가능하려면 형태가 연필같이 가늘고 길어도 바람에 견디게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 현대에 와서는 콘크리트 강도가 더 강해졌다. 그뿐 아니다. 흔히 ‘펜슬타워’라고 하는 최초의 초고층 아파트에서는 바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섯 층씩을 묶고 6번째 층마다 바람이 통과하게 한 층을 비워 놓았다. 덕분에 같은 용적률로도 더 높게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건축 법규, 세금 정책, 공원 분포 상황, 구조 기술 등이 합쳐져서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은 지금도 역동적으로 바뀌는 중이다. 그곳에 집을 사기 위해 세계의 부가 모이고 그 스카이라인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들도 모인다. 하지만 그 시작은 공중권이라는 개념을 만든 창의적 생각이었다. 우리나라 도시들을 세계인이 찾는 곳이 되게 하려면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 생각이 우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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