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1] 사진을 부르는 풍경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2023. 2.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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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희, 태평염전, 2022.

인간은 순응한다. 천재지변에 순응하고, 환경에 순응하고, 주어지는 것들에 순응한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있고 그냥 받아들일 순 없는 것도 있으니 때론 거스르거나 극복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힘이 닿지 않거나 애를 써도 달라지지 않는 일엔 결국 순응만이 길이다. 받아들이고 따르거나 뒤집어엎고 뛰쳐나가야 할 시간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생사와 존폐를 가른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생존한 종(種)으로서 인간은 적응의 방책인 순응의 미덕을 영리하게 써온 것이다.

자연을 품은 풍경 앞에서 저절로 숙연해지거나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 중에 잠시 붉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만으로도 새삼스럽게 설레는 기분이 드는 날이 있지 않은가. 자연은 항상 새롭게 우리를 자극하고 놀라게 한다. 늘 거기에 있는 듯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21세기의 인간은 그런 순간에 주섬주섬 카메라를 찾아서 셔터를 누른다.

건축가 조웅희는 학생 시절부터 줄곧 사진을 찍어 온 취미 생활자다. 건축물과 도시 사진은 물론이고 가는 곳마다 자신의 감정이나 아이디어를 기억하기 위해 다양한 사진을 찍는다. 그의 사진에 전략적이거나 개념적인 요소는 없다. 그보단 직관적이거나 정서적이거나 기능적이다. 잘 정돈된 프레임은 건축가다운 조형미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의 사진이 지니는 매력은 누구나 자연에 순응하듯이 반응하게 되는 아름다움의 요소들을 골고루 수집해내는 데에서 나온다.

그는 지난 몇 해 동안 예술가들이 머물 작고 소박한 집을 설계하기 위해 자주 염전을 찾았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인공과 자연의 대비, 반복과 원근법, 역광 등등 좋아 보이는 장면의 비결을 골고루 갖추었다. 물 위에 비친 전봇대가 점점 멀어지는 모습은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대표적인 반복 형태이다. 여기에 부서지듯 포착된 빛 번짐 효과가 더해져서 평화로운 소금밭 풍경이 감각적으로 완성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사진을 찍지 않곤 배길 수 없는 시간이 있다. 이 또한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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