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진정한 복수

경기일보 2023. 2.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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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태 수원가톨릭대 교회법 교수

요즘 복수 드라마 ‘더 글로리(The glory)’가 화제다. 학창 시절 왕따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복수 이야기다. 기존 복수극과 다르게 이 드라마에서는 칼 한 자루 나오지 않는다. 대신 과거 괴롭힘을 당한 주인공이 복수라는 자기만의 정의 실현을 위해 20년 동안 철저히 준비하며 원수와 그의 삶을 파괴하려 한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드라마는 사실 학교폭력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 사회 병폐 현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더 글로리’에 대해 “학교폭력이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잔혹한 행위임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순수한 어린 학생들에게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고질적으로 굳어 버린 학교폭력의 행태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가해 학생이 자신의 행위가 잘못이라고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 보복이 두려워 이웃들에 말할 수 없는 피해 학생의 입장, 범죄 수준이 아닌 그저 학생들 간의 사소한 갈등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처한 비정상적인 가정환경과 교육환경, 어린 학생을 처벌할 수 없는 법의 사각지대 등 여러 문제가 엉켜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모든 폭력에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약자와 강자, 부유함과 가난함, 다수와 소수 등과 같은 환경이 누군가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상황으로 연결되기 쉽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폭력에는 인간을 마치 물건처럼 취급하는 사회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모든 형제들’ 24항).

진정한 복수는 무엇일까? 드라마 주인공은 “타락할 나를 위해! 추락할 너를 위해!”라며 복수의 서막을 알린다. 그러나 그 복수의 결말은 나와 원수 모두 망가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만 가슴속 깊이 남지 않을까. 정답은 잘 모르지만 성경에서 그 힌트를 찾고 싶다.

성경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 30-37)가 나온다. 상처 입은 한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고, 무심하게 그 사람 곁을 지나가던 사제(제사장)와 레위인(제사장을 돕는 계층)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와 사회적 명망이 있는 직업군이다. 철저히 자기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사회적 위치만을 신경 쓰는 이들이기에 길가에 버려진 사람은 그들에게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사회적 지위도 없고, 그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방인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상처 입은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여정을 중단하고 계획을 수정해 그를 돕는다.

어쩌면 진정한 복수는 원수, 그리고 그의 악행과 상관없이 내가 당당해지는 삶이 아닐까 싶다. 나를 추락시키려 했던 원수의 뜻과 달리 하느님께서 창조한 ‘나’라는 소중한 존재가 추락하지 않고, 추락할 수 없으며, 또 보란 듯이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많은 이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추락하지 않고, 추락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과 행동이 진정한 복수의 서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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