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 마음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2023. 2.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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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뒷심을 받아 최근 13일 내내 흥행 1위를 하며 25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에서 200만 관객을 넘긴 일본 애니메이션은 드물다. 이런 추세라면, 260만 관객이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최고 흥행기록을 가진 <너의 이름은.>의 379만명도 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엄밀히 말해, <슬램덩크>는 이미 30여년 전 그 내용이 다 소개된 작품이다. 모르는 내용이라 궁금해서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알기 때문에 본다. <슬램덩크>가 주었던 어떤 ‘정서’를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슬램덩크>가 창작된 시기는 일본 경제의 버블기, 우리 경제의 호황기와 맞닿아 있다. 경제 대국의 꿈을 이룬 일본은 1990년대에 들어서며 급작스러운 붕괴를 경험하게 된다. 간혹 필 때보다 질 때가 아름답듯이 역설적이게도 버블은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을 자극했다.

버블기 일본의 대중문화는 그 원류라고 할 수 있을 미국, 할리우드 문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토착화해낸다. 미국 상품의 상징 코카콜라는 <아이 필 코크(I feel coke)>의 낭만적 감성으로 변주되고, 팝과 재즈 같은 미국식 대중음악은 시부야케이로 재해석되었다. <슬램덩크> 역시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미국 프로농구(NBA)와 연관된다. <슬램덩크>는 30여년 전 버블기의 추억을 감성적으로 건든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왜 이토록 인기를 끄는 것일까? 일본의 1990년대 초가 붕괴의 시작점이었다면, 한국의 1990년대는 민주화와 경제적 호황 그리고 문화적 개방이 맞물린 풍요롭고 자유로운 시대였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얻은 정치적 자긍심에 88 올림픽 이후 유례없는 경제 호황 기록이 보태졌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부풀었던 시절, 그 당시의 청소년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 문화적 포식성으로 이후 X세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X세대는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개방성으로 기억된다. 당시만 해도 금지된 일본 문화를 적극적으로 탐닉했고,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던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직접 찾아 손수 번역, 공유하며 즐기던 세대이기도 하다. 정치적 구호보다는 문화적 취향을 선언함으로써 세대적 차별성을 고지하던 세대, 그 세대가 이제 40대가 되면서 다시 한 번 문화소비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탑건: 매버릭>의 흥행에서 짐작되었다. 40대는 현재 10대, 20대의 부모 세대이기도 한데 개방성만큼 문화적 전도력이 높아, 자녀 세대를 향한 문화콘텐츠 소개와 확산에 적극적이다. 강력한 취향의 고백은 그만큼 흡인력을 갖는다. 40대는 자녀 세대에게 <탑건>이나 <슬램덩크>를 권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탑건>이나 <슬램덩크> 흥행 지표가 다른 대중문화 상품과 달리 3040에서 촉발해 1020세대로 확산되는 양상인 이유도 여기 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는 변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감독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말처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 작품이 처음 등장한 시절의 초심을 잘 살려내고 있다. 그가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명랑만화의 과장된 표정이나 말투, 학원 폭력물의 어쭙잖은 액션이 아니라 농구에 대한 진심, 결점을 이겨내는 열정의 힘이었다.

이런 움직임은 20년이 훌쩍 넘은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재개봉에서도 발견된다. 사람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즐기는 게 아니라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난다’(슬램덩크), ‘나는 세상의 왕이다’(타이타닉)라고 소리치던 정서와 다시 접촉하고 싶은 것이다.

3D, 4D로 즐길 만큼 기술은 발전하고, 식사를 하거나 누워서 볼 수 있을 만큼 영화관 시설은 고급화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영화에서 얻고 싶은 것은 훨씬 더 단출하다. 지금 여기에 없는 열정, 낭만, 기대를 다시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왜 하필 지금, 과거와의 교감이 더 절실해졌느냐이다. 내일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어제가 더 나은 세상이라면, 여기 우리의 삶은 그만큼 부조리하고 고되다는 뜻일 테다. 삶이 고단할수록 향수는 힘이 세진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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