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서울대 ‘문리대’ 이름은 사라졌지만…‘제국대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있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로 시작하는 1971년 박건의 노래는, 옛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동숭동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라는 가사는 그 당시 대학생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적 낭만주의의 치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지금은 수도권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 ‘마로니에 공원’이 자리한 그곳은 옛 서울대 문리대의 정원이 있던 곳이었다.
1971년의 사진은 문리대 정문을 보여주는데, 이제는 복개되어 보이지 않는 개천이 정문 앞을 가로지르고 있다. 1950∼1960년대의 사회 현실에 대한 대학생들의 자괴감은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으로 표출되었고, 서울대생들은 이 개천을 ‘센강’으로, 개천 위의 다리는 ‘미라보 다리’라고 불렀다. 막걸리에 취해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라며 아폴리네르의 시 구절을 읊을 수 있는 것 또한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낭만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관악산 아래 모두 모여 있는 서울대 캠퍼스는 원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1924년 일본제국의 6번째 제국대학으로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은 예과는 청량리에, 법문학부는 마로니에 공원 자리에, 의학부는 건너편 서울대병원 자리에, 이공학부는 공릉동 서울과학기술대 자리에 있었다. 상대의 전신인 경제전문학교는 종암동 서울사대부고 자리에, 공대의 전신인 공업전문학교는 현 방송통신대 자리에, 사범대의 전신인 사범학교는 을지로 훈련원근린공원 자리에 있다 용두동으로 옮겼다. 경성제대 법문학부가 서울대 문리대의 전신이다.
1946년 미군정 법령에 따라 경성(제국)대학과 9개의 전문학교를 통합해서 ‘국립서울대학교’를 만들겠다는 안, 즉 ‘국대안’이 나왔을 때 2년간 한국은 ‘국대안 파동’이라는 격렬한 갈등에 휩싸였다. 국대안 파동에는 미 군정과의 갈등, 친일 청산, 좌우 대립 등이 가로놓여 있지만, 그 근저에는 당시 경성대학, 훗날의 문리대가 가지고 있던 엘리트 의식이 작동하고 있었다. ‘제국대학’과 ‘전문학교’가 어찌 동렬에! 서울대 문리대생이 가졌던 자부심은 군사독재 시절에는 남다른 소명의식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최고 학벌’의 지배 카르텔로 귀결되었다.
1975년 관악캠퍼스가 생기면서 서울대 ‘문리대’의 이름은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이름일 뿐, ‘제국대학’은 영원히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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