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중진의乙을위한변명] 세상의 절반인 ‘을’에게

2023. 2. 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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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입시가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아내가 보여준 헌신과 사랑에 가족 구성원 모두 경탄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지요.

"맞아. 영혼을 다 갈아 넣었어."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부모에 관한 영화였습니다.

특히 아이를 떼어놓고 온 엄마들의 심정은 더 말할 것도 없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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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입시가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은 두 아이 모두 대학에 합격했으니까요. 기쁨도 잠시. 아내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언을 했습니다.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살고 싶어.”

가족 중 아무도 대꾸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짧게는 학교생활 12년, 길게는 출산부터 20여년. 그동안 아내가 보여준 헌신과 사랑에 가족 구성원 모두 경탄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뿐인가요. 시댁, 친정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도 늘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늘 ‘중요한 회사 일’을 하는 바쁜 사람이었으니까요.

아내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합니다. 그 방편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도시에서 잠시 떨어져 살아보고 싶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고는 머리가 더 멍해졌습니다.

어느 날에는 아이들과 영화를 보다가 아내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맞아. 영혼을 다 갈아 넣었어.”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부모에 관한 영화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결심했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일이니 당분간 시간을 주기로. 누구는 그동안 못 찾은 자유를 누린다며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도 한다는데, 기껏해야 한 주에 2~3일 자유시간을 못 줄 성싶으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슴속엔 여전히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지방근무를 할 때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던 아이들 돌보기가 저의 몫으로 떨어진 것에 대한 두려움. 남자가 아닌 여자가 혼자 살아보기를 해보겠다는 것에 대한 어색함. 뭔가 여러모로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방에서 근무할 때 혼자 생활하던 여성 동료들의 어려움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었지요. 특히 아이를 떼어놓고 온 엄마들의 심정은 더 말할 것도 없었을 테지요.

‘조선에서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남편과 결혼한 것’.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허난설헌이 세상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로 꼽았다는 것들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남녀차별’이지요.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지만, 우리 사회에서 남녀평등은 아직 요원합니다. 2022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남녀평등지수는 99위에 불과합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현실이지요.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여전히 ‘乙’의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확고하게. 이제 그 ‘乙’에게 자신의 삶을 살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양중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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