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단 ‘센터’도 차지한 김정은 딸…이대로 ‘권력승계설’ 굳히나

박준희 기자 2023. 2. 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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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단에서 열병식 참관하는 김정은의 뒷줄
‘국무위원장’ 휘장 한가운데 지정석에 착석
전날 건군절 기념연회 테이블에서도 정중앙
지난해 첫 등장 때부터 고위장성들 극진대우
일각선 딸 아끼는 ‘인간적 면모’ 강조용 분석
북한이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인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한 가운데 주석단에서 이를 참관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뒷편, 국무위원장 휘장 바로 아래 딸 김주애가 자리잡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북한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년을 계기로 야간 열병식이 진행된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또다시 ‘상석’을 차지는 모습을 연출, 그에 대한 ‘권력승계설’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9일 조선중앙통신에 의해 공개된 열병식 현장 사진에서 김주애는 10세 정도의 불과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과 주요 군장성 및 요인들이 열병식을 참관하는 주석단에 올랐다. 특히 김주애는 주석단에 마련된 두 줄의 지정좌석 중에 북한 최고 권력자인 ‘국무위원장’ 휘장 바로 아래, 인공기 대열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국방위원회를 김 위원장 집권 후 지난 2016년 현재의 명칭으로 개편한 국무위원회는 북한 권력구조상 국방성과 국가보위성(대남공작·비밀경찰), 사회안전성(경찰청) 등 핵심기관을 비롯해 내각의 부처를 지도하는 기구다. 그런 기구의 상징 바로 앞자리를 김주애가 차지한 것이며 북한 당국은 주석단 지정석 가운데 가장 상석을 김주애에게 내준 셈이다.

티테이블이 마련된 김주애의 자리 오른편으로는 어머니 리설주 여사가 착석했으며 왼쪽의 빈자리는 김 위원장의 자리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김주애 외에도 다른 자녀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날 행사에서 김 위원장 가족을 위해 마련된 지정석은 3개뿐이었다. 그외 김 위원장 가족 뒷줄에는 북한 당국 고위 관계자들을 위한 지정석 4개가 준비돼 있었다 .

또 김주애는 주석단의 지정석에 앉아만 있던 것이 아니라 열병식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주석단 앞줄까지 나와 아버지 김 위원장의 옆에 나란히 서기도 했다. 김 위원장 부녀의 좌우로는 군과 당의 고위 인사들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반면 김주애는 주석단 앞줄에서 김 위원장과 열병식을 참관하며 편안히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북한의 정치권력 구조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속한 국무위원회가 내각을 지휘한다. 자료=통일부 북한정보포털
북한이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인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한 가운데 주석단에 오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뒷편, 국무위원장 휘장 바로 아래 딸 김주애의 좌석이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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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열병식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을 상징하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등 북한의 전략 무기가 대내외에 공개됐다. 김주애는 지난해 화성-17형의 시험발사 당시에도 김 위원장과 현장을 참관한 바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이에 따른 북핵 위기는 고 김일성 주석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 NPT)에서 탈퇴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는 김일성의 유훈이자 북한의 주체사상과 자력갱생을 주도하는 ‘백두혈통’ 김 씨 일가가 체제를 유지하는 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평가된다. 이런 토대 속에 김 위원장이 미국 등을 위협할 수 있는 북한 핵 전력의 대표적 무기인 최신형 ICBM의 시험발사와 열병식 공개 현장에 김주애를 계속 동행시킴에 따라 김주애가 사실상 권력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낙점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8일 실시된 북한의 열병식에 등장한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연합뉴스

김주애가 공개 석상에 등장할 때마다 북한 매체와 고위 장성들은 극진한 예우를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화성-17형 시험 발사 공로자들과의 기념촬영 당시 김주애는 김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허리를 숙인 군 장성들과 악수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번 열병식 전날 열린 건군절 75주년 기념연회에서는 군 고위 장성들이 헤드테이블 중앙에 자리를 잡은 김주애와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몸을 낮추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미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북한 매체도 김주애가 공개 석상에 등장할 때마다 그에 대한 호칭의 격을 높여 왔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해 11월 18일 화성-17형 시험발사 소식을 전할 당시 처음 공개 행보에 나온 김주애에 대해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칭한 바 있다. 그러나 화성-17형 시험발사 공로자 기념촬영 소식을 전할 때는 ‘존귀하신 자제분’으로 격을 높였다. 이번 건군절 기념연회 참석을 전하는 기사에서는 김주애를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칭했다.

첫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김주애에 대해 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이례적’이란 평가를 내렸다. 지난해 11월 북한 외무성 소속의 영국 주재 공사를 지내다 탈북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첫 번째 공개와 두 번째 공개에서의 아주 큰 차이가 있다”며 “첫 번째는 ‘사랑하는 자제분’, 두 번째는 ‘존귀하신’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두 번째 보도 때) 김주애에 대해서 북한의 4성 장성으로 진급한 이런 사람들이 허리 굽혀 폴더인사를 한다. (김 위원장) 딸은 허리를 편 상태에서 손을 내밀고 북한 간부들이 허리 굽혀서 인사한다”며 “북한의 간부들이 미성년자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다? (이런 일은) 김일성 때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당시 “별 4개 짜리 (장성)하고 악수를 하는데 어린애(김주애)가 허리를 굽히지 않는 것 보면 이미 그것은 내막적으로는, 과거에 대개 조선조 때도 7살에서 10살 그 사이에 세자로 내정을 했다”며 “나이 많은 노장군들이 10살짜리한테 충성을 맹세하는 그런 장면이 방영이 되면서 북한 인민들한테 그런 줄 알라(고 공포하는 것)”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또 “이미 이제 김주애로 후계자가 결정이 되고 앞으로 아마 웬만한 데는 다 데리고 다니면서 훈련을 시킬 것 같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8일 ‘김정은은 딸이 예상되는 후계자라는 가장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분명한 후계자의 신호”라고 강조했다. WP는 “10∼11세로 추정되는 김주애가 통상 리더를 위한 자리인 사진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보여준다”며 “(건군절 기념연회) 테이블에서 최고위 장성들이 이 가족 뒤에 서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고 짚었다. WP는 또 “그들이 연회장에 들어서자 메달로 장식된 재킷을 입은 군 지도자들이 서서 박수를 친다”고도 했다. 이어 WP는 “사진들은 김 씨 일가의 정통성 주장을 유지하는 데 있어 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같은 ‘권력승계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북한 전문가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김주애의 전면 등장에 관해 “(김 위원장) 자신이 그저 한 아이의 아빠, 한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이는 모두 김정은 자신의 이미지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김 위원장이 대외내적 관심을 돌리고, 인간다운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딸을 앞세우는 것이란 분석이다. 또 베넷 연구원은 김주애를 국가의 주요 행사 전면에 앞세우는 이유에 대해 김 위원장의 여동생으로서 ‘권력 2인자’로 불리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견제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통일부 당국자는 9일 기자들과 만나 김주애의 연속적인 등장에 관해 “후계구도는 이른 감이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 가족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과시하는 이미지 연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어제(8일) 노동신문 사진을 보면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두고 사진이 연출됐다”며 “그런 차원에서 이르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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