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가야하는 군대, 그럼 군악대라도…“나팔 과외 찾는 北청소년들”

박준희 기자 2023. 2. 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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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청소년들, 징병제 입대 준비
고생 덜 하는 군악대 배치 위해
“올해 처음 나팔 사교육 등장”
지난 2019년 6월 20일 북한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북한 군악대가 공연을 펼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남녀 징병제를 취하는 북한에서 남자는 만17세쯤에 입대해 10년여간 군 복무를 한다. 또 한국과 달리 여자도 징병 대상이며, 남자와 비슷한 시기에 입대해 7년여 간 근무한다. 한국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북한 청소년들에게 군 입대는 큰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 청소년들도 기왕 군 생활을 해야만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편한 보직에서 복무 기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황해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요즘 사리원에서는 초모 대상자(입대 대상자)들 속에서 나팔(트럼핏 등 금관악기) 사교육이 뜨고 있다”면서 “나팔을 배우려는 초모생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라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나팔은 초모 대상자인 고급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 학생이라면 누구나 배우고 싶어하는 악기”라며 “나팔을 배우려는 초모생들이 늘어나면서 나팔을 배워주는(가르치는) 가정교사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청소년들이 이처럼 나팔을 배우려는 이유는 군 생활 때문이라고 한다. 이 소식통은 “초모생 사이에서 나팔 사교육이 인기 있는 것은 나팔을 배우면 군단 선전대에 선발돼 군사복무 기간 배고픈 고생은 안 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평안남도의 한 소식통도 RFA에 “요즘 평성에서는 나팔을 배우려는 초모생들이 많아졌다”면서 “나팔을 배우면 건설부대에 배치되어 군사복무를 한다고 해도 군 선전대에 선발되어 나팔을 불면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강도 높은 노동과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다만 북한 청소년들이 나팔을 배우기란, 그것도 사교육으로 배우는 것은 교육 여건과 비용 측면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각종 사상 교육 등의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 북한에서 사교육은 불법이다. 다만 최근에는 한국 댄스를 가르치는 사교육 등을 제외하고는 당국이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북한의 사교육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대학교수들과 초·고급중학교 교사들에 대한 식량 배급이 중단되면서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RFA는 “교수 및 교사들이 생존하기 위해 시작된 사교육 범위는 주로 외국어였다”며 “2000년대에 이어 2010년대에는 시장경제의 활성화로 그 범위와 대상이 크게 확대됐다”고 전했다.

또 RFA는 북한 사교육의 확대 요인에 대해 장마당 경제의 활성화로 주민들이 장사를 통해 개인소득이 늘어나는 동시에 자녀에게 투자해 개혁개방에 대비하려는 학부모의 의식 변화가 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평양은 물론 지방도시에서도 사교육 범위는 수학과 물리, 컴퓨터와 IT, 무용과 음악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군악대 지원을 위한 나팔 사교육은 최근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해북도 소식통은 “나팔 사교육이 등장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며 “나팔은 고급중학교 음악교원(교사)이나 시의 당 선전대 나팔수 등이 자택에서 배워준다”고 말했다. 또 평안남도 소식통은 “나팔을 배우려는 초모생이 늘어나자 고급중학교 음악교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난 이후 저녁과 주말 시간을 이용해 초모생들 상대로 나팔을 배워주고 돈을 벌고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경제 사정이 어려울 경우 이 같은 사교육을 받기도 어렵다. 트럼펫과 색소폰, 호른 등 각종 나팔은 개인이 자체로 장마당에서 구매해야 하는데, 중고품이나 새 제품에 따라 가격은 북한 돈 3만 원(약 3.7달러)에서 50만 원(약 61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다. 또 나팔 사교육 비용은 1시간 당 북한 돈 3만 원(약 3.7달러) 정도로, 나팔에 대한 기초교육을 마치려면 하루에 1시간 이상 1개월을 배워야 하므로 90만 원(약 111달러)이 소요된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이에 비해 대학교수와 고급중학교 교사 월급은 장마당에서 쌀 1kg도 살 수 없는 3000원(약 0.37달러) 수준이다. 북한 장마당에서 쌀 1kg의 현재 시세는 5300~5500원(약 0.64~0.67달러) 정도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나팔을 배우려면 장마당에서 나팔을 사는데 최소 3만 원, 한달 간 나팔을 배우는 비용이 100달러 이상”이라며 “가정이 가난한 초모생들은 나팔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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