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대한민국 국민인가요?”…출생신고 없이 태어난 아이들

박홍주 기자(hongju@mk.co.kr) 2023. 2. 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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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미등록 한해에 100명 이상
의료 교육 혜택도 받지 못하고
아동 학대 범죄에 무방비 노출
[사진 = 연합뉴스]
지난해 2월 대전 서구의 한 행정복지센터가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가정 방문을 진행하던 중, 한 가정에서 출생이 등록되지 않은 아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후 6개월 아이의 친모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발견 당시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홀로 아이를 몰래 키우고 있었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면 남편이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자신을 찾아와 괴롭힐까 두려워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출생신고 없이 태어나 국가의 기본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한 해에만 100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자라면서 적절한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아동학대 피해자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출생통보제’는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출생 등록이 되지 않은 상태로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한 아동은 269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 해 평균 100명 이상의 아이가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인증받지 못한 채 시설에 보내지는 것이다. 시민단체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2019~2020년 전국 251개 아동복지시설을 조사한 결과 출생 미등록 아동 수가 146명으로 확인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사에 잡히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 미등록 아동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법상 출생신고의 의무자인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가 아동의 출생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동거하는 친족이나 의사, 조산사, 지자체장, 검사 등이 부모 대신 출생등록을 할 수 있지만, 부모가 숨길 경우 이들이 대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출생신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도 5만원에 불과해 강제력도 떨어진다.

지난 2021년 12월에는 제주에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온 24·22·15살 세 자매가 발견돼 뒤늦게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된 일도 있었다. 이들의 친모 B씨는 “세 자녀 모두 집에서 출산했고, 출산 후 몸이 안 좋아 출생신고를 바로 하지 못했다”며 “나중에는 출생신고 절차가 복잡해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자매는 검정고시 공부를 하면서도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는 등 오랜 기간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출생통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관련 법률은 국회에 머물러 있다. 출생통보제는 아동의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뿐 아니라 의료기관에게까지 확대해 병원에서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출생이 등록되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위원장 성명을 통해 “출생등록을 하지 못한 아동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정부가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출생통보제 등의 조속한 법제화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법무부도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지난해 4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 의료기관에 행정적 의무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불만이 나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제도 개선이 멈춰선 사이 피해 아동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출생 미등록 아동학대 사건은 2018년 5건, 2019년 89건, 2020년 74건, 2021년 74건 등 매년 수십건을 웃돌고 있다. 2021년 경북 구미에서 세 살배기 아이가 버려진 채 반 미라 상태로 발견된 것이 대표적이다. 인권위 역시 “출생 등록이 되지 못할 경우 보호자와 주변 사람들에 의한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국가도 이러한 피해 상황을 인지할 수 없다”며 “필수적 예방접종과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하고 취학연령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의료·교육 방임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했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 역시 “OECD 대부분 국가에서 의료기관에도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거나 실무적으로 의료기관에서 처리하고 있고, 부모에게만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곳은 한국과 중국, 일본뿐”이라며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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