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히 잠들 수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깨운다

곽창렬 기자 2023. 2. 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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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꿀잠을 도와줘, 급성장하는 수면산업
게티이미지뱅크·그래픽=김의균

40대 직장인 윤모씨는 하루 7시간 이상 잠을 자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해 30만원짜리 스마트 워치를 샀다.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밤새 몇 시간 동안 잠을 잤는지, 코골이는 얼마나 했는지 등을 가장 먼저 체크한다. 최근에는 87만원짜리 베개도 하나 샀다. 이 베개는 사용자가 코고는 소리를 감지해 높낮이를 조절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윤씨는 “잠을 얼마나 잘 잤느냐에 따라 하루 컨디션이 완전히 결정되기 때문에 이 정도 돈을 쓰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밤잠 설치는 사람이 갈수록 늘면서 수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침대·베개 등을 생산하는 전통적인 업체뿐만 아니라, 야쿠르트 같은 식품업체도 수면에 도움을 주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애플, 삼성 같은 IT 기업들도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수면의 질을 진단·분석하고 숙면을 돕는 ‘슬립테크(sleep-tech)’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폴라리스 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수면 시장(수면 보조 제품 판매) 규모는 2021년 640억8000만달러(약 80조7700억원)였는데, 매년 7.1%씩 성장해 2030년이면 1183억1000만달러(약 14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수면 시장도 2011년 4800억원에서 2020년대 들어 3조원대로 6배 이상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한국 수면산업협회). 덩치가 커진 수면 산업은 우리의 잠과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깊은 잠 못 잤네요’ 점수까지 매겨준다

요즘 수면과 관련해 기술 개발과 상품 출시가 가장 활발한 분야는 ‘진단’ 분야다. 아무리 자도 찌뿌둥할 때 예전엔 수면 클리닉을 찾아 각종 검사를 받아야 했지만, 요즘엔 스마트 워치만 있어도 내 수면의 문제가 뭔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작년에 내놓은 ‘갤럭시워치5′는 잠을 잘 때 ‘총 잠잔 시간’과 ‘렘수면’(깨어 있는 것에 가까운 얕은 수면) ‘깊은 수면’ ‘수면 중 깸’ 등으로 나눠 시간을 측정한다. 이용자가 코를 골면 코골이를 녹음해 들려주고, 코를 곤 시간도 측정해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깊은 수면을 늘리려면 이른 시간에 취침하라”는 식의 조언과 수면 점수도 내놓는다. 시계 내에 있는 가속도 센서가 사람의 호흡을 미세 운동 신호로 감지하고, 광학심박센서가 사용자의 심박지수·변화·편차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애플은 애플워치와 ‘오토슬립’이라는 유료 앱을 통해 이용자의 수면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기록한다. 특별한 기기 조작 없이도 사용자가 언제 잠드는지 자동으로 감지해 수면 시간, 중간에 잠깐 깨거나 뒤척거린 횟수, 심박 수 등을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수면의 질을 퍼센트로 알려주고, 잠잘 때 주변 소음도 측정해 이용자가 소음을 줄이도록 유도한다.

아마존의 수면용 탁상시계 ‘헤일로 라이즈’. 몸에 착용하지 않고도 이용자의 활동 상태를 감지해 적절한 수면 습관을 조언한다. /아마존

아마존이 자난해 9월 출시한 탁상시계 ‘헤일로 라이즈’도 이용자의 수면을 파악해 조언하는 기능을 갖췄다. 이 기기는 방 온도와 습도, 밝기를 측정하고 사용자의 움직임과 호흡 패턴을 감지한 뒤 AI 알고리즘으로 신체 변화를 분석해 수면 단계를 추적한다. 잠자기 전 침대에서 책을 읽거나 TV를 보는 행동과 본격적으로 자려는 단계 등도 구별해 낸다. 아마존은 이 기기 개발을 위해 ‘야간 수면다원검사’라 불리는 임상 표준에 따라 AI를 훈련하고 검증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에서 109.99달러에 팔리고 있다.

핀란드 헬스케어 기업 ‘오우라(Oura)’가 내놓은 스마트 반지도 이용자가 깊은 잠, 얕은 잠 등을 얼마나 잤는지 기록한다. 심장 박동 수와 온도 등을 고려해 잠을 얼마나 잘 잤는지 점수도 알려준다. 폭 7.9mm, 두께 2.55mm 크기에 가벼운 티타늄 재질로 제작돼 무게가 4~6g에 불과하지만, 반지 내부에 온도와 심박 수를 측정하는 센서, 혈중 산소를 측정하는 적외선 LED 등이 장착돼 있다. 손가락에 끼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손목에 차는 스마트 워치보다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경도 조절 매트리스, 숙면 유도 야쿠르트

진단을 넘어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제품에도 소비자들은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메모리폼이나 라텍스, 필로톱 등 고급 침구류 소비가 늘면서 전 세계 매트리스 시장은 2017년 270억달러에서 2020년 326억달러 규모로 커졌다. 한국도 2011년 3000억대 규모이던 매트리스 시장이 2022년엔 1조8000억원에 달했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에이스침대의 ‘에이스 헤리츠’, 시몬스침대의 ‘뷰티레스트 블랙’ 등 가격이 무려 2000만~3000만원에 이르는 초고가 매트리스 판매도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크게 늘었다.

숙면 유도를 위해 전통적인 침대에 각종 I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매트리스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미국 매트리스 회사 사트바(Saatva)가 내놓은 스마트 매트리스는 공기층이 내장돼 경도를 조절할 수 있다. 템퍼사가 출시한 2500달러짜리 ‘에르고’는 상·하부 각도 조절과 마사지 기능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 코웨이가 내놓은 스마트 매트리스도 사용자가 잠자리에 들면 각 지점에 가해지는 ‘압’(壓)을 측정해 아홉 단계로 딱딱한 정도를 조절한다. 가령 사용자가 잠잘 때 주로 침대 위쪽에 눕는 습관이 있다면 매트리스 위쪽이 보다 딱딱해지는 식이다. 신권섭 코웨이 슬립케어팀장은 “기존 침대 매트리스 내부에는 스프링이 들어가 있지만, 스마트 매트리스에는 80여개의 에어포켓이 있어 딱딱함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높낮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스마트 베개, 온열과 마사지 기능 등을 갖춘 전자식 안대, 코골이를 완화하는 양압기 등도 인기다. 국내 기업 10마인즈(Tenminds)가 개발한 베개 ‘모션필로우3′는 센서가 사용자 머리 위치와 무게, 코골이 소리 등을 감지하고 베개 안에 장착된 에어백이 움직여 최대한 편하게 잘 수 있게 베개의 높낮이가 조절된다.

알아서 온도를 조절해 숙면을 유도하는 이불이나 매트리스도 있다. 영국의 침구 전문 업체 심바(simba)사가 개발한 이불 ‘심바 하이브리드 듀벳’은 열을 흡수하고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배출하는 방식으로 온도를 조절한다. 덥거나 추워서 잠못드는 사람들을 겨냥해 만든 제품으로, 여름·겨울 구분 없이 4계절 내내 사용할 수 있다.

‘꿀잠’에 도전하는 기업들은 침구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숙면을 돕는다고 알려진 요구르트가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 야쿠르트사가 내놓은 ‘야쿠르트1000′은 한 병에 ‘시로타’라는 유산균 약 1000억개가 함유돼 있다. 이 유산균은 숙면을 돕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소개됐다. 한 병당 가격은 130엔(약 1230원)으로 기본 모델 ‘야쿠르트400′(80엔)보다 비싸지만, 지난해 중순 일본에서 하루 157만병씩 팔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 후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에서 스트레스 해소와 숙면을 돕는 식품 시장이 2013년 11억엔에서 지난해 331억엔 규모로 성장했다.

명상을 유도하는 앱도 숙면을 위해 이용된다. 미국 명상 유도 업체 캄(Calm)은 ‘수면 스토리’라는 메뉴를 통해 빗소리, 숲소리 등 자연에서 들리는 소리와 원하는 스토리를 들으면서 잠잘 수 있도록 유도한다. 유튜브에도 심리 안정과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는 ASMR 영상들이 조회수 수백만을 자랑한다. 미국의 의료기기업체 피셔 월러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불면증 치료용 전기 자극기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뇌를 자극해 세로토닌처럼 수면을 개선시킬 수 있는 물질이 나오도록 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수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기업을 상대로 수면 관련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국내 스타트업 에이슬립은 카이스트에서 AI와 사물인터넷(IoT)을 전공한 이동헌 대표가 2020년 6월 설립했다. 이 업체는 스마트 워치처럼 몸에 착용하지 않아도 AI가 호흡 소리를 정확히 인식하고 호흡 패턴을 분석해 수면 단계를 판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약 7000여 명의 수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숙면을 돕는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 둥을 개발하는 LG전자 같은 기업이 주고객이다.

◇‘4당5락’에서 잠 못 드는 사회로

사실 슬립테크 제품은 이미 1990년대 국내에서 반짝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엠씨스퀘어’라는 기기다. 검은 선글라스와 이어폰, 본체 등으로 구성된 이 제품은 원래 기기에서 방출되는 빛과 소리를 이용해 깊고 빨리 잠들 수 있게 돕는 용도로 만들어졌는데, 집중력 향상과 공부에 도움을 준다는 마케팅에 힘입어 당시 30만~40만원짜리 기기가 350만대나 팔려나갔다. 엠씨스퀘어 제작사인 지오엠씨 김병철 전무는 “잠을 잘 잔다는 말조차도 생소한 시절이었는데, 이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전국에 있던 80여 개 대리점 주인이 새벽부터 본사로 와서 서로 먼저 물건을 가져가겠다고 경쟁이 벌어질 정도였다”고 했다. 그래도 ‘사당오락’(四當五落·하루 네 시간만 잠자면서 공부하면 대학 입학에 성공하고 다섯 시간 이상 잠을 자면 실패한다)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사회 전반적으로는 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2010년대 이후 웰빙과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수면 산업이 급성장세를 맞았다. 잠에 대한 만족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것도 국내외 소비자들이 수면 관련 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성인은 100여년 전 증조부모 세대보다 2시간 정도 적게 자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면의 질도 하락해 글로벌 가전업체 필립스가 2021년 한국, 미국, 호주, 일본 등 세계 13개국 국민 1만3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5%만이 수면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특히 한국은 수면 만족도가 전체 평균보다 훨씬 낮은 41%에 그쳤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면 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6년 49만명에서 2021년 70만명으로 43% 늘었다.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받은 환자 수도 2010년 2만명에서 2019년 8만여 명으로 급증했다.

불면은 개인적으로도 고통이지만 경제·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이다. 하버드대 의과대학 연구진은 미국 근로자들이 수면 부족으로 결근하거나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기업들이 떠안게 되는 손실이 연간 15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가 고혈압·알츠하이머 등으로 이어져 지출되는 의료 비용 등이 연간 4000억달러(약 49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요한 한 건 습관, 일찍 일어나 많은 빛 봐야

하지만 시장에 쏟아지는 다양한 첨단 제품들도 불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꿀잠에 빠지게 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지난해 미국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37%가 현재 나와있는 수면 관련 제품과 서비스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답했다. 컨설팅업체 록헬스어드바이저리의 2021년 조사에서도 수면 관련 웨어러블 기기 사용자 가운데 약 40%는 효과가 없다며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비싼 침대나 스마트 워치 같은 기기들은 잠을 잘 자게 돕는 도구일 뿐 가장 중요한 건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수면 환경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잠을 잘 자기 위해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날 것 ▶침실을 조용하고 어둡고 편안하게 할 것 ▶TV나 스마트폰 같은 전자제품을 침대에서 멀리 둘 것 ▶잠자기 전 과식이나 카페인, 알코올 섭취를 피할 것 등을 권한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의학과 이헌정 수면센터장은 “사람은 보통 잠에서 깬 지 15~16시간이 지나면 졸리게 돼 있는데, 늦게 일어나면서 밤에 잠이 잘 오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몸은 빛이 눈으로 들어와 뇌로 전달돼 생체시계를 맞추기 때문에 아침에 충분히 많은 빛을 봐야 생체가 활성화되고 밤에 잘 잘 수 있다”고 말했다. 정기영 대한수면연구학회장(서울대 교수)도 “잠을 잘 자려면 기상 시간이 제일 중요하고, 특히 주중·주말 구분 없이 매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여름과 달리 겨울에는 빛을 늦게 볼 수 있으니 아침에 조명을 켜서 뇌를 일찍 깨우는 것이 좋다”며 “아무리 비싼 스마트 기기와 침대를 쓴다고 해도 기본 생활 습관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큰 소용이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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