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특례’에 우려 쏟아낸 1기 신도시
“용적률 500% 과도, 현실성 약해”
인프라 확보 없인 ‘주거 질’ 저하
정부 주도 이주대책 마련 등 지적
정부가 지난 7일 1기 신도시 재건축 때 용적률 500%를 허용하는 등 대폭적인 규제 완화를 밝힌 데 대해 지역생활 환경을 저해하고 각종 인프라 부족을 일으켜 ‘주거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기됐다.
종상향을 통한 용적률 완화의 현실적 어려움과 특별정비구역 지정에 따른 지역 주민 간 갈등을 우려하는 지적도 나왔다. 지자체장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정부의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1기 신도시 지자체장 간담회’에 참석한 5곳의 시장들은 정부가 마련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대해 기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이동환 고양시장은 “용적률을 파격적으로 완화해 지자체 결정 권한을 많이 부여해줘서 감사하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됐을 때 지역이 갖고 있는 주거환경 특성상 인프라 확보가 어려운 지역도 많다는 점”이라며 “무작정 용적률을 많이 받도록 하기보다는 가구 수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으면 인프라 확보가 완벽할 수 없는 만큼 (용적률 완화와 관련한 세부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련한 특별법안을 보면 정비사업 대상인 노후계획도시 내에 대규모 광역교통시설 등 기반시설을 확충할 경우 안전진단을 면제하고, 종상향을 통해 용적률도 완화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이 경우 2종 일반주거지역을 3종 일반주거지역이나 준주거지역 수준으로 상향하면 용적률이 300%까지 높아지고, 역세권 등 일부 지역은 최대 500%를 적용해 고층 건물을 짓는 게 가능하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과연 용적률 500%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기반시설은 부족한데 용적률만 올리는 게 주민의 삶의 질이나 복지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익 부천시장은 “부천은 밀집도가 높은 상태”라면서 “부천시는 ‘공간도 복지’로 보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번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에서는 꼭 정비현장에서 ‘공간복지’가 실현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성남·안양·군포 등 “이주단지 절대 부족”
‘혜택’ 기대감에 리모델링 중단 움직임도
지자체장들은 특히 이주대책이 보다 체계적으로 수립돼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성남은 구 원도심인 수진1구역과 신흥1구역에 순환식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주단지를 조성해도, 이주단지에 입주한 세입자들이 ‘눌러앉아 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점점 들어갈 수 있는 가구 수가 줄어들고 있다”면서 “분당 1기 신도시 재건축까지 진행하면 이주단지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 시장은 “만약 이주단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비사업에 큰 제약이 따를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성남 내 개발제한구역을 비롯해 보전가치가 낮은 녹지지역의 개발제한을 풀어 이주단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국토교통부에 제안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안양이나 군포는 가용부지가 전무해 이주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용적률을 높여 재건축사업을 허가했을 때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가 있어야 할 입주자 전세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큰 틀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장들은 재건축에 따른 초과이익 환수 범위와 공공기여 범위, 이주 대상 주민들의 금융지원 등도 세부적으로 특별법에 담겨야 한다고 밝혔다. 또 특별정비구역 지정 과정에서 지정된 구역과 지정받지 못한 구역 간 주민 갈등 문제도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이번 정부 발표로 현재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 가운데 혼란이 빚어지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파격적인 용적률 완화 방안을 제시하자 재건축 사업성이 다시 생길 수 있다며 리모델링을 철회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최 시장은 “분당과 평촌은 리모델링이 활성화돼 이미 시행 중인 곳도 많고, 안양은 전체 53개 단지 중 28개 단지가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 발표로 주민들의 갈등과 혼란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인데 현재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 조합원들 중에는 벌써 리모델링을 철회하겠다는 의견을 내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동일선상에 놓고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에 보다 더 많은 규제 완화 및 혜택이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자체장들의 우려와 관련,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특별법은 무엇을 못한다, 하면 안 된다는 규제적 관점보다는 그동안의 제도가 ‘몸의 성장을 막기 위한 틀’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공통의 기반들을 보장하고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접근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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