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야 현장 찾아…에르도안 “이런 지진, 대비 불가”
‘지진세 6조원 걷어 어디 썼나’
건축 규제 부실 총체적 분노
“허위 비방” 총선 방어 급급
지진 발생 사흘째인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에서 정부의 늑장 대응을 두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이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진 발생 후 처음 찾은 재난 현장에서 “이런 지진은 대비를 할 수 없다”면서 정부에 대한 허위비방을 탓했다.
이날 남부 하타이를 찾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취재진과 만나 당국 대응과 관련해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렇게 큰 재난에 준비돼 있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재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관련해서는 “일부 부정한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허위비방을 늘어놓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또 “지금은 단결과 연대가 필요한 시기”라며 “이럴 때 순전히 정치적 이익을 따져 네거티브 공세를 펴는 이들을 견딜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는 5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민심이 악화되자 에르도안 대통령이 적극적인 방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CNN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강력한 지진으로 마을들이 무너져내리며 대중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구조작업 지연과 더불어 20여년간 징수한 ‘지진세’(특별통신세)가 제대로 사용됐는지에 대해 불만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튀르키예는 1999년 1만7000여명이 사망한 서북부 대지진을 겪은 후 지진 예방과 응급 서비스 개선 등 다양한 사업에 쓰겠다면서 ‘지진세’를 도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1년 지진세율을 33%나 인상하기도 했다. AFP통신은 튀르키예가 그간 지진세로만 총 880억리라(약 5조9000억원)를 걷은 것으로 추정했다.
게다가 방진 규제를 통과한 신축 건물들이 이번 지진에서 맥없이 주저앉자 정부의 부실한 건축 규제에 대한 분노도 커지고 있다.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의 재난학 교수 데이비드 알렉산더는 “지진은 매우 파괴적이었지만 잘 지어진 건물을 완전히 무너트릴 수준은 아니었다”고 BBC에 말했다. 튀르키예는 1999년 대지진 후 내진 규제를 대폭 강화했지만 정부가 안전 규제를 위반한 건물에 대한 과태료 등을 대폭 감면해주는 등 부실 건물을 사실상 방치해왔다고 BBC는 지적했다.
지진 발생 후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당국의 대응에 대한 비판 메시지가 봇물을 이루자 트위터와 틱톡 접속이 차단되기도 했다. 튀르키예 당국은 “기술적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통제에 나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트위터는 현재 튀르키예에서 구조를 위한 중요한 통신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네트워크 모니터링 업체인 넷블록의 알프 토커는 “현재 트위터는 구조대원과 실종된 사람을 찾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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