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민방공 훈련
1971년 12월10일 오전 10시. 전국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경계경보. 북한 전폭기 36대와 전투기 20대가 해주 기지를 출발해 남하하는 것이 우리 공군 레이더에 포착됐다. 3분 후 서울 상공에서 기습공격 예상. 시민들이 황급히 지하실·지하도·방공호로 대피했다. 곧이어 더 요란한 사이렌과 다급한 종소리가 나왔다. 공습경보. 대규모 폭격 후 원자탄·세균가스탄도 투하됐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30여명 사망, 50여명 부상. 해제경보는 낮 12시에 내려졌다. 긴박했던 2시간. 그러나 실제가 아니라 가상 상황이었다. 해방 후 처음 실시된 전국 단위의 민방공 훈련이었다.
공습에 대비한 민간 방어 훈련인 민방공 훈련은 1972년 1월부터 매달 15일 실시됐다. 민방위기본법이 제정된 1975년 이후에는 각종 재난대비 훈련과 더불어 민방위 훈련의 근간을 이뤘다. 민방위 훈련이 민방공 훈련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인 셈이다. 그런데 매번 전국 단위로 실제 대피 훈련이 이뤄진 건 아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인 2010년 12월15일, 전 시민이 가까운 지하 안전시설로 대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특별훈련이 1975년 이후 35년 만에 처음 실시된 전국 동시 민방공 훈련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가짜 평화에 기대 민·관·군·경의 통합 훈련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총력 안보 대응을 주문하자 정부가 오는 5월에 전국 단위 민방공 훈련을 6년 만에 부활하기로 했다. 민방공 훈련이 각 지자체 단위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열리는 것은 북한의 괌 포위사격 위협과 미사일 도발로 위기가 고조됐던 2017년 8월 이후 처음이다. 다시 전국에 긴박한 사이렌이 울리고, 시민들은 정해진 방공호를 찾아 신속히 대피하는 훈련을 하게 됐다. 전에 없던 경보 문자까지 개인 휴대전화로 보내준다 하니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핵 위협을 하는 판이니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난 대피 훈련도 해두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위기의식도 없이 또 시설 등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훈련만 강조하는 것은 무리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훈련하는 것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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