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자 받아서 뭐해, 좀 크게 먹자”…여기에 한달 39조 몰려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안정적인 은행에 넣은 자금들이 주식이나 채권을 비롯한 위험자산으로 몰리는 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 여파로 나타났던 ‘역(逆)머니무브’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중 자금이 은행에서 투자로 방향을 튼 배경엔 시장 금리가 하향 국면에 접어들면서 예금 이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11~12월 연 5%대로 치솟았던 5대 시중 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 금리(1년만기)는 최근 연 3% 중반대까지 떨어졌다. 이날 기준 연 3.38~3.60%인데, 2% 후반대 진입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기예금 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가 기준금리 인상 종료를 선반영해 빠르게 하락하고 있어서다.
시중은행 PB들에 따르면 앞으로도 금리가 추세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원금 손실 리스크를 떠안더라도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요즘 은행PB센터에는 급격한 금리 하락세에 당혹스러워하며 예·적금을 해지하는 고객이 줄을 잇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1월말 기준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12조25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던 지난해 12월 말(818조4366억원) 대비 6조1866억원 줄었다.
은행에서 빠져나간 돈은 투자로 흘러가고 있다. 투자상품을 취급하는 자산운용사의 수신액은 지난 한달간 51조4000억원 급증했다. 단기자금을 굴리는 머니마켓펀드(MMF)는 작년 12월만 해도 3조원 가량 줄었지만, 지난달엔 무려 39조원이 유입됐다. 채권형펀드와 주식형펀드도 각각 2조원, 4조1000억원 늘었다.
정성진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증권사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전자단기사채(전단채), 20~30년만기 국채, 주가연계증권(ELS) 등 위험자산으로 회귀하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며 “부동산 투자 대기 자금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노대희 신한은행 신한PWM 강남센터 팀장은 “국고채 장기물에 투자하는 펀드의 경우 현재 듀레이션이 7.4년 정도 돼 국고채 금리가 0.5%포인트만 더 떨어져도 3%포인트 추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정기예금 이자율에 더해 초과수익을 기대하는 고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했다.
김아영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WM전문위원도 “최근 급격히 떨어진 정기예금 금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채권으로 투자 수요가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의 채권금리가 높은 수준이라고 보고 향후 채권금리가 떨어질 것으로 판단한다면 자본수익까지 거둘 수 있어 매력이 더 커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중국 주식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중국이 리오프닝(경제 활동재개)하면서 그간 억눌렸던 소비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고 한다. 노 팀장은 “향후 중국 정부에서 경기부양책을 보다 강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성장 전망도 높다”며 “연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양호한 투자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비중 확대를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지은영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차장은 “금, 은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며 실물로 구입하는 고객도 등장했다”고 전했다.
이와함께 대출부터 일단 줄이려는 움직임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 부진과 대출 금리 상승으로 가계 대출은 19년만에 최대폭으로 줄었다. 지난달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53조4000억원으로 전월보다 4조6000억원 감소했다. 감소폭으로는 2004년 1월 통계 집계 이래 최대 폭이다.
그동안 증가일로 였던 주택담보대출은 798조8000억원으로 전월과 같은 수준을 기록했고, 신용대출이 포함된 기타대출은 253조2000억원으로 4조6000억원이나 줄었다. 윤옥자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높은 수준이고 부동산 경기도 부진해 신규주택자금 수요가 많지 않아 대출도 정체 상태”라며 “신용대출은 강화된 대출 규제와 명절 상여금을 원금 상환에 쓰는 등 계절적 요인까지 겹치며 감소폭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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