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칼럼] 론스타 사태: 모피아가 무너뜨린 금융감독

한겨레 입력 2023. 2. 9. 19:25 수정 2023. 2. 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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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칼럼]정부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고 이미 공표했고 그런 견해를 유지해왔는데, 이제 뒤집으면 정부정책의 비일관성이 드러나 ‘정부의 자의적 법 집행’ 논리를 입증하게 된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설혹 정부의 비일관성이 드러나더라도, 그간 잘못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바로잡는 게 옳지 않을까. 향후 국내 금융감독과 금산분리 원칙의 정립을 위해서도 말이다.
지난 20년 동안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건은 이른바 모피아로 불리는 금융관료들의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사진은 2003년 8월27일 론스타 매각 본계약 체결 직후 이강원 외환은행장.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지난해 8월 말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중재판정부가 론스타 사건 판정문을 발표했다. 한국외환은행이 론스타펀드에 매각되고 20년, 론스타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하고 10년 만이다. 판정문에는 모피아(재무부+마피아, 금융관료)가 무너뜨린 금융감독이라는 ‘한국 금융의 민낯’이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2003년 10월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인수한 론스타는 2012년 2월 이를 하나금융에 3조9157억원에 매각해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그럼에도 소송을 제기한 건 탐욕일까 또는 오만일까. 중재판정부는 청구금액 46억7950만달러 가운데 2억1650만달러만 한국 정부가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2003년 매각 당시 외환은행은 독일 코메르츠방크, 수출입은행 및 한국은행이 공동 대주주였기에 정부가 매각을 주도했다. 정부는 은행 부실을 핑계로 은행법시행령을 우회통로로 사용해 론스타의 한도초과보유 주주 자격을 인정하고 외환은행 지분 51% 취득을 승인했다. 그런데 몇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째, 외환은행 비아이에스(BIS) 자기자본비율이 8%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주가가 급등했고 헐값매각 논란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외환은행장 등이 배임 혐의로 기소됐는데, 훗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한다. 둘째, 은행법시행령 해석이 자의적이고 은행법 제2조 위반이며 상위법인 금융산업구조개선법을 넘어서는 재량권 남용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셋째, 론스타의 비금융주력자 여부 판단이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금융감독위원회 소관으로 당시 김석동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이 검사 조사에서 재경부 유권해석에 따른 것이라 했으나, 금감위 부실감독을 자인한 것일 뿐이다. 그 뒤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은 ‘오락가락과 묵인’이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했다.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를 합해 금융위원회(금융위)를 설치하고 금감원을 지도·감독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이 재경부와 금감위로 분리됐을 때는 역할 분담과 책임 소재가 분명했으나, 개편 뒤 두 기능이 금융위 단일 조직에 모이면서 산업진흥(금융산업정책)이 감독(금융감독정책)을 압도하며 견제와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피아가 포진한 금융위가 과거 잘못을 인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2010년 11월25일 론스타는 하나금융과 매매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외환은행과 외환카드 합병 과정에서 주가조작 혐의로 론스타코리아 유회원 대표가 기소됐고 이에 금융위 승인도 미뤄졌다. 유 대표의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 뒤인 2011년 11월18일 금융위는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상실을 발표하고 동일인 한도 초과분 41% 매각명령을 내렸다. 금융당국은 “10년 말 기준 론스타펀드Ⅳ의 일본 내 골프장운영회사(PGM) 등 비금융계열사 자산 합계가 2조원을 초과해 산업자본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시민단체 등이 요구한 징벌적 조건 없이 매각명령을 내렸다. 또다시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그리고 2012년 1월27일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11년 말 골프장 매각으로 론스타의 산업자본 문제가 해소됐다’며 하나금융에 지분매각을 승인했다. 이에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 전체를 3조9157억원에 하나금융에 매각하게 된다. 금융위가 론스타를 산업자본으로 볼 수 없다는 그간의 감독 실패를 끝내 인정하지 않고 론스타의 ‘속먹튀’(속이고 먹고 튀기)를 도와준 것이다.

2012년 2월 론스타 ‘먹튀’와 관련해 국회에 출석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오른쪽)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왼쪽).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중재판정부의 다수의견은 론스타의 하나금융 매각 과정에서 드러난 금융위의 관망(wait and see) 정책이 가격 인하를 목적으로 추진돼 국제투자보장 협정상 공정공평대우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이는 정당한 규제권 행사가 아니며 금융위 고유의 사적이익(its own institutional self-interest) 추구로 판단했다. 하나금융의 인수자 적격성이나 감독당국의 건전성 규제 목적과 무관하고,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부당한 가격개입이자 투자자에 대한 신의성실원칙 준수 실패로 보았다. 한편 중재판정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유죄 확정판결로 론스타가 수시적격성 부적격이었던 것이 가격 인하에 영향을 준 것을 인정했다. 결국 론스타의 청구액 대부분을 기각하고, 론스타와 하나금융이 처음 계약 체결가격과 실제 매매가격 사이 차액의 50%인 2억1650만달러씩을 각자 부담하도록 판결했다.

정부는 판정부 결정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관련해서 시민단체 등과 법무부 사이에 비금융주력자 이슈를 놓고 이견이 존재한다. 시민단체 등은 아이에스디에스가 국내법상 무자격 인수자에 대한 관할권이 없어 이제라도 비금융주력자 이슈를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무부는 정부가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고 이미 공표했고 그런 견해를 유지해왔는데, 이제 뒤집으면 정부정책의 비일관성이 드러나 ‘정부의 자의적 법 집행’ 논리를 입증하게 된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설혹 정부의 비일관성이 드러나더라도, 그간 잘못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바로잡는 게 옳지 않을까. 향후 국내 금융감독과 금산분리 원칙의 정립을 위해서도 말이다.

배상금이 대외적 문제라면 대내적으로 책임규명의 문제가 남아 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지난 1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정당·노조·시민단체 공동기자회견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제안한 국정조사가 설득력을 지닌다. 이번 정부 총리와 경제팀 수장 다수가 론스타 사태와 연관돼 있다는 지적 또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들이 론스타 대응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잘못이다.

지난해 8월 론스타 국제투자분쟁 판정 뒤 정부 쪽 대응 방안을 발표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공동취재사진

론스타 사태가 한국 금융에 던지는 교훈으로 마무리한다.

첫째, 한국 경제 급성장에 모피아의 공이 컸다 해도 외환위기 책임이 절대 가볍지 않다. 외환은행의 부침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이제 한국 경제가 선진경제로 진입하는 상황에서 모피아 영향력을 줄이고, 판정문이 지적한 적법한 규제권으로 금융질서를 이끄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금융감독기구가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금융위의 산업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감독정책 기능은 금감원으로 각각 통합해 금융감독의 견제와 균형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론스타 사태는 비금융주력자 규제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특히 요즘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허용에 신중해야 함을 시사한다. 단 국제화 시대에 국적보다 행태가 중요하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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