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있는 도시
[크리틱]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지난해 말, 미래도시에 관한 세미나에 함께 참석한 한 공무원이 서울시가 추진 중인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UAM) 외에도 서울이 21세기 경쟁력이 있는 도시가 될 아이디어를 물었다. 일반인에게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고 알려졌지만, 도시·건축 전문가에게 파리는 근대 도시역사의 교본 같은 곳이다. 내가 파리에서 오래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공무원이 그럴듯한 답을 기대한 배경이었으리라.
19세기 초까지 인류는 공동체 기반의 ‘마을’에 살았다. 이는 혈연이나 씨족으로 결속된 부족형 도시를 의미한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근대라는 시대가 열리자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 돈벌이가 되는 도시로 몰려들었고, 대도시들은 몰려드는 이방인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서로 모르는 이방인들을 밀집되게, 그러나 충돌 없이, 그러면서도 위생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근대도시 이론의 근간이었다. 여기에 환경이나 지속성 같은 ‘요즘’ 걱정은 사치처럼 보였다.
18세기 말부터 절대권력의 붕괴와 복귀라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던 파리도 몰려드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런데 하필, 나폴레옹 3세라는 황제가 권력을 잡자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시작은 수십년 권력을 위협해온 민중봉기의 씨를 말리려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칠 수 없게 도시를 손보고 싶었던 권력자의 조바심은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킨다. 이른바 ‘도시당국자’다. 1호 직함은 1853년 파리시장에 임명된 오스만 남작에게 주어졌다. 그는 구불구불한 자연발생 도로를 방사형 직선도로로 재편하고, 트램과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도입하고, 전염병의 주원인 오·폐수를 지하로 흐르게 하는 등 획기적인 도시시스템을 선보인다. 이런 시도가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세계 많은 도시가 이를 모방했고 그렇게 근대도시의 시대가 열린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근대도시개발론과 함께 전 세계에 전파된 도시당국자들은 시민을 그전과는 다르게 바라본다. 시민을 일종의 ‘자원’으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시민이라는 ‘자원’의 적절한 분배와 효과적인 활용을 뒤에서 총괄하는 ‘거버너’의 위치에 등극한다. 이 역할은 조선인 ‘자원’의 동화와 동원을 강제했던 일제의 도시계획자에서, 노동자 ‘자원’의 복종과 경쟁을 유도했던 지도자 시대의 도시공무원으로 이어진다. 막힘없는 빠른 교통은 그 자원의 효과적인 배치와 활용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장치였다. 미래도시의 혜안을 물었던 그 공무원이 그리는 도시경쟁력의 실체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또 한번 역사가 반전된다. 근대도시를 태동시킨 파리가 가장 최근 배출한 ‘도시당국자’ 안느 이달고 시장은 세계 도시당국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도시개조론을 제안한다. 도심 차량통행을 반으로 줄여 자전거에 우선권을 주고, 기존 도로를 뜯어 녹지로 되돌리고, 도시를 구역화해 시민이 모든 도시 활동을 근거리에서 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로 도시를 개조하겠단다. 즉, 다시 ‘마을’로 돌아가겠다는 소리다. 지난 백년 세계로 전파된 ‘도시경쟁력’을 위한 근대도시론과는 정반대에 가까운 행보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원조 도시당국자, 오스만 시장의 근대도시 원안의 실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산업발전을 갈구했던 타국 권력자에게는 덜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개발론과 함께 수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급격한 도시팽창 방지, 인간을 왜소화하지 않는 건물 높이 유지, 보행의 쾌적성을 우선한 차량 순환, 일상적 접근이 쉬운 소규모 도심공원 확보, 도시에 근접한 대자연 유지 등이 그것이었다. 이달고 시장의 ‘반근대적인’ 도시정책도 바로 그 원안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만 알려진 진짜 근대도시론은 ‘자원’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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