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장관 팬미팅’된 이종호 장관의 청년과기인 간담회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는 ‘제4회 청년과학기술인포럼’이 열렸다. 이날 행사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직접 청년과학기술인을 만나기 위해 참석하기로 하면서 과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대학 이공계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대학원생은 물론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젊은 연구원까지 모여 이 장관에게 현장의 애로사항을 전하는 자리였다.
이 장관은 스물아홉 살에 교수에 임용된 경력이 있는 ‘천재 공학자’였다. ‘늘공’이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연구실에서 업적을 쌓아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후배인 청년 연구자들이 겪는 애로사항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갈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막상 간담회가 시작됐지만 분위기는 기자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1시간20분 가량 진행된 장관과의 대화는, 옆에서 지켜보는 기자 입장에선 마치 ‘장관 팬 미팅’처럼 느껴졌다.
연구 현장에서 청년 과학자들이 겪는 고충이나 현장 연구자 출신 과기 정책 수장으로서 고민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보다는 대부분 시간이 ‘모범적인 과기인’ ‘과기인의 롤모델’로서 장관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물론 정부 고위 관료와 현장 연구자들의 첫 만남이 어색해 분위기를 환기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시간 넘게 진행된 간담회는 ‘아이스브레이킹’에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된 것처럼 보였다. 정작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는 간담회가 끝나갈 무렵 나오기 시작했다.
이날 참석자로 초청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대학원에 들어왔을 당시 트렌드였던 연구 주제가 있어 골랐는데, 졸업 시점에는 그 주제가 트렌드에서 멀어지면서 학위를 따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정부와 기업이 단기적 연구 투자만 하다보니 트렌드가 너무 빠르게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하며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는 한 청년 연구자는 “연구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창의적 연구를 늘려가려면 원활한 연구실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하지만 수직적이고 꽉 막힌 연구실 문화와 일부 교수들의 권위주의적 자세로 학생들이 고통을 받고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연구자들이 어렵게 시간을 받아 조심스럽게 제안한 연구현장 문제에 대해 정작 이 장관의 대답은 한가롭게 들렸다. 이 장관은 자신이 “교수 시절 학생들과 갈등을 빚지 않았다”며 “제도를 만들어 연구실 문화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와 소통할 수 있는 전도사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당장 현장에서 답하기에 어려운 문제들이지만 해결책은 커녕, 어떤 위안도, 작은 문제라도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도 엿보이지 않은 ‘말의 성찬’처럼 들리기에 충분했다. 이날 행사는 시간적, 또 공간적 한계로 대다수 청년 과학기술인들이 초청을 받지는 못했지만 언론이나 SNS를 통해서 장관의 메시지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자리였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학생연구원 인건비 기준을 높였다며 청년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렇게 올린 학부생 인건비 기준은 월 130만원, 석사 학생연구원은 월 220만원인데 올해 최저임금이 209시간 노동 기준으로 월 201만580원이다. 실제로 학생연구원 상당수가 학업과 함께 근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 임금 기준보다 적은 돈을 받도록 해줬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자랑할 일인가 싶다.
이 장관이 ‘노력하는 천재’ ‘모범적인 과기인’으로 불리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해온 과학기술인이란 점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인구 절벽과 저성장으로부터 한국 사회를 구출할 미래의 인재를 지켜준 ‘성공한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불리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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