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고아 품어준 튀르키예군, 어찌 잊으리오"

이효석 기자(thehyo@mk.co.kr) 2023. 2. 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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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업 앙카라형제회 회장
6·25 참전 튀르키예 군인들
1951년 '앙카라학원' 세우고
전쟁통 부모손 놓친 고아 수용
1966년까지 640명이 거쳐가
지난달 기념사업회 출범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를 어떤 이들은 '부모의 나라'로 기억한다. 튀르키예 6·25 참전 군인들이 전쟁고아의 부모를 자처하며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앙카라학원'을 세운 건 1951년이었다. 그들도 고국에 부모와 형제를 두고 온 20대 청년이었다. 피란 중에 부모 손을 놓친 아이 하나둘을 보호하던 게 시작이다. 전쟁통에 돌봐야 할 게 고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중엔 극빈 가정 아동도 앙카라학원에서 배고픔과 추위를 이겼다. 모인 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 과정까지 교육을 마치고 인근 학교로 진학해 배움을 이어갔다. 튀르키예군 철수가 있었던 1966년까지 640여 명이 이곳에서 생활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앙카라학원 터에는 기와로 된 여자 기숙사 건물이 남아 있다.

이곳 출신 회원들을 이끄는 오수업 앙카라형제회 회장(78·사진)의 사연도 비슷하다. 오 회장의 기억에 따르면 황해도 연백군 출신인 그는 가족과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피란을 가던 중 폭격을 맞고 기차에서 떨어지며 부모·형제와 생이별했다. 1951년 그는 여섯 살 나이로 앙카라학원에 들어가 취업해 독립할 때까지 생활했다. 젊은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중 오 회장은 형제와 극적으로 상봉했다고 전했다. 경찰이던 큰형과 검찰 수사관이던 작은형이 수소문 끝에 그에게 연락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신 뒤였다.

앙카라학원이 왜 문을 닫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튀르키예군 완전 철수가 이뤄졌던 1968년부터 앙카라학원은 복리시설과 사회복지법인으로 변경을 추진했다. 1974년 앙카라학원은 사회복지법인이 됐다. 하지만 용인시에도 시설을 갖추고 운영되던 앙카라학원이 1979년 돌연 폐원됐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수원시에서 이전등기 등을 요구하는 문서만 확인된 상태다.

앙카라형제회 명부엔 현재 40여 명의 이름이 남아 있다. 정기 모임을 열고는 있지만 세상을 떠난 이도, 세상에 나오기를 꺼리는 이도 있어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않는다. 형제회 회원 중에는 외부에 노출되기를 극도로 꺼리는 이들이 있다. 이는 고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그들은 옛 기억에 관한 고마움은 있지만 자녀가 독립해 결혼하고 자리 잡은 이후에도 과거를 대놓고 밝히기는 힘들어한다.

그런데도 오 회장이 앙카라학원 기념을 위해 나선 것은 튀르키예 군인들이 전쟁고아를 비롯해 아이들 교육을 위해 헌신했던 역사가 잊힐 수도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앙카라학원 설립과 운영에 참여했던 튀르키예군 현지 생존자는 2~3명으로 알려져 있다. 간이 건축물에서 시위잠을 자던 고아들은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됐고 점차 기억도 희미해지고 있다. 오 회장은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사랑을 나눠준 튀르키예 참전 군인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다"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달 27일 앙카라학원 기념사업회 출범식에 참석하고 회장직을 맡게 된 것도 그런 이유다. 한파가 한창이던 이날 공익법인 아시아문화연구원(원장 김용국)은 수원에 있는 앙카라공원에서 '앙카라학원 기념사업회' 출범식을 개최했다. 출범식에는 그간 역사 연구를 도맡아온 아시아문화연구원 임직원을 비롯해 튀르키예대사관과 앙카라형제회, 국가보훈처, 시 관계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아시아문화연구원이 국회에서 '앙카라학원 기념사업' 방안 모색을 위한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아시아문화연구원과 앙카라학원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간다. 튀르키예 역사와 문화 교육, 튀르키예 참전용사 후손과 교류, 6·25전쟁 당시 유품 수집, 양국 우호 증진을 위한 세미나 및 사업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오 회장은 "앙카라학원과 튀르키예군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다"며 "내가 어떻게 그들을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수원/이효석 기자·사진/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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