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득보다 실이 많을 방송사 영업정지

2023. 2. 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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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말 개국한 종편채널은 도입 당시의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방송산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지상파 3사가 독과점했던 방송시장에 프로그램 다양성을 가져왔고, 시청률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면서 볼거리가 늘어났다.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이 공전의 시청률 성과를 거뒀고,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는 매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위탁 조사하는 시청자평가지수(KI)에서 좋은 프로그램 순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JTBC가 만든 다양한 드라마도 방송채널을 넘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의 성과는 더 긍정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방송사업자 재산상황공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종편채널 4사는 총 5조4612억원을 자체 제작과 외주 제작에 투자했다. 출범 이듬해 4176억원에 불과했던 제작비가 2021년에는 7936억원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2021년 종편 4사의 방송사업 매출이 1조698억원이니 그해 방송 매출의 74.2%를 제작비로 투자한 것으로, 지상파 3사의 제작비 투자 비율 64.6%보다 높다. 또 종편 4사의 방송 종사자는 약 2000명에 이른다. 여기에 납품하는 외주제작 종사자까지 합치면 1만명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다.

그런데 MBN에 6개월간 방송 송출을 전면 중단하라는 업무정지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이런 처분이 채널 출범 당시 MBN이 제출한 허위 서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 처분이 초래할 파장은 MBN에 너무 가혹할 것이다. 방송 상품은 경험재이기 때문에 브랜드와 인지도가 시청자의 채널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6개월의 시간은 MBN이 시청자들에게 잊힐 만큼 긴 시간이다. 시청자가 떠난 채널은 광고주도 외면할 테니 매출이 급감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제작투자 위축, 제작 인력 감축, 고용불안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야기해 6개월의 업무정지가 아니라 사실상 채널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 방송사가 특정 외주제작사와 독점 납품 계약을 맺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외주제작사에도 치명적이다. MBN에 대한 징벌 효과를 넘어서 시청자는 즐겨보던 정보와 오락 프로그램을 빼앗기고, 방송시장은 연간 2000여 억 원의 큰손 투자자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무정지로 달성하려는 공익과 MBN 및 다수의 협력사, 그리고 시청자에게 미칠 직간접적인 피해 간의 신중한 이익교량이 필요하다. 과거 이와 유사한 조처가 내려졌던 한 홈쇼핑채널의 경우 6개월 동안 오전 2~8시에 6시간씩만 방송을 중단하는 완화된 처분을 받았다. 해당 채널의 영업손실이라는 직접적인 타격뿐만 아니라 이 채널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협력 업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허가 과정에서 일부 부정한 서류를 제출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러나 현재 그 위법사항이 대부분 해소되었고, 관련자도 상응한 처벌을 받았다는 점과 지난 10여 년 동안 MBN이 우리 방송 콘텐츠산업 생태계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도 참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글로벌 사업자와의 경쟁이 치열한 국내 방송시장의 현재를 고려하면 종편채널들이 국내 방송산업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중요하다. 국내 방송산업의 위기 상황에서 채널의 생존까지 위협할 업무정지라는 극한 처방 외에 대안은 없는 것일까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주용 인하대 교수·전 한국방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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