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한국서 상품 팔 수 있나요"…명품 기업들 줄 섰다 [배정철의 패션톡]

배정철/박종관 2023. 2. 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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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오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김범준 기자


한 백화점 명품 담당 바이어는 지난해부터 과거엔 마주칠 일이 없었던 사람들과 미팅을 갖는 일이 잦아졌다. 유럽 주요국 대사관 관계자들이다. 이 바이어는 “해외 브랜드들이 주한 대사관과 국내 에이전트를 통해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상품을 팔 수 있는지 귀찮을 정도로 문의한다”고 했다.

이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이 글로벌 명품 업계의 명실상부한 ‘큰 손’으로 떠오른 실상을 보여주는 일단이다. 럭셔리 산업의 본거지인 유럽에선 “한국은 전 세계 명품 시장의 별”(이탈리아 전국지 ‘일 솔레 24 오레’)이란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9일 글로벌 리서치업체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체 명품 시장 규모는 141억6500만달러(약 17조8600억원)로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전 세계 7위 규모다. 1인당 소비규모는 세계 최대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0만4000원)로 미국(280달러) 중국(55달러)을 제쳤다.

이에 따라 명품으로 분류되는 해외 주요 브랜드들은 급을 가리지 않고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2021년 이후 한국 직진출을 선언한 명품 브랜드는 총 9개다. 메종마르지엘라, 질샌더 등을 보유한 OTB그룹은 한국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직원들을 뽑고 있다.

톰브라운 역시 삼성물산과의 10년 계약을 종료하고, 한국에 톰브라운코리아를 세울 예정이다. 시계 브랜드로는 오데마피게가 지난해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최고경영자(CEO)를 뽑았다.

최근 수년간 명품 판매로 큰 재미를 본 국내 백화점과 면세점은 명품 부문에 대한 투자를 가속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서울 소공로 옛 제일은행 본점 매장을 명품 부티크로 꾸미기 위해 샤넬과 카르티에 등 브랜드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명품시장이 꾸준히 성장함에 따라 해외 브랜드의 한국 투자도 계속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 번째 명품 물결

코로나19 창궐 후 이어진 국내에 부는 명품 열풍을 관련 업계에선 ‘세 번째 물결’로 지칭한다. 1990년 수입자유화 이후 ‘3대 명품’으로 불리는 루이비통(1991), 샤넬(1991), 에르메스(1997)가 한국 법인을 설립한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길거리에서 3초마다 하나씩 보인다는 의미의 ‘3초백’이라는 별명이 루이비통 스피디백에 붙은 2000년대 중반 대중화 시기다. 이후 10~15년 만에 다시 한 번 ‘명품 물결’이 찾아왔다는 얘기다.

 달라진 한국 위상

패션 브랜드 톰브라운은 지난달 톰브라운코리아를 설립하고 국내 직진출을 선언했다. 톰브라운 제공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2021년 이후 한국 수입사와 계약을 종료하고 직접 진출을 선언한 해외 브랜드는 8개에 이른다. 올해에는 ‘메종마르지엘라’, ‘질샌더’ 등 신명품을 상당수 보유한 OTB그룹과 ‘톰브라운’ 등이 국내 패션기업과 수입 계약 종료를 선언하고, 한국 법인에서 근무할 직원 채용에 나섰다.

이미 진출해 있는 명품 브랜드의 한국 시장 공략도 거세다. 티파니는 2021년 50억원을 들여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한 달간 250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구찌가 2021년 5월 서울 한남동에 선보인 ‘구찌 가옥’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의 ‘핫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곳엔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을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구찌 오스테리아’가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들어섰다. 앞서 4월엔 디올이 성수동에 연면적 1500㎡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명품 기업들의 인사 정책에서도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커졌음을 엿볼 수 있다. 과거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총괄하는 본부장은 통상 홍콩이나 일본법인에서 나왔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지사가 아태지역을 맡는 브랜드가 많다. 버버리와 보테가베네타는 한국 지사장이 일본과 아시아 지역 전체 사업을 총괄한다. 티파니와 부쉐론 등은 아태본부를 거치지 않고 본사에 직보하는 체제다.

 성장세 어떻길래


 명품 기업들이 너도나도 한국 공략을 강화하는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가 거론된다. 첫 번째는 매력적인 시장 성장세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명품 소비액은 2021년 대비 24% 증가한 총 168억달러(약 21조1000억원)에 달했다.

명품 사는데 1인당 325달러(40만9000원)를 써 미국(280달러·35만3000원), 중국(55달러·6만9000원)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 전국지 ‘일 솔레 24 오레’는 최근 “한국은 전 세계 명품 시장에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국가”란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한류스타를 활용한 마케팅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K팝 스타들의 경우 중국 등 아시아지역과 남미에서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을 뛰어넘는 인기를 구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1년엔 그룹 엑소의 멤버 카이가 구찌와 함께 출시한 177만원짜리 니트가 중국에서 판매 시작과 동시에 동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따라 명품 기업들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치는 글로벌 패션쇼를 한국에서 여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디올이 지난해 5월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연 게 대표적이다.

이 패션쇼엔 당시 디올의 최고경영자(CEO)였던 피에트로 베카리를 비롯해 수석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등 고위층이 총출동했다. 구찌도 오는 5월 한국에서 ‘2024 구찌 크루즈 패션쇼’를 연다.

 ‘탈(脫)중국’ 흐름도 영향

명품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게 한국에 반사이익을 가져다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인앤드컴퍼니 럭셔리 리포트에 따르면 중국의 명품 시장은 작년에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 10% 역성장했다.

명품 기업들은 중국에서 받은 타격을 한국 등에서 만회했다. 버버리의 경우 지난해 중국 매출이 전년보다 23% 감소한 가운데 한국(10%) 일본(28%)이 성장하면서 충격을 줄였다.

배정철/박종관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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