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차기 대표 선출 원점으로···국민연금 앞세워 사실상 외압 논란

구교형 기자 2023. 2. 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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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모 KT 대표가 지난해 11월16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KT의 AI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KT제공

KT가 차기 대표이사 공모 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여권에서 구현모 대표의 연임 후보 선정을 두고 “밀실 담합”이라고 비판하는 등 압박 끝에 ‘공개경쟁 방식’으로 새로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

앞서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10.13%)은 대표 선임의 절차적 하자를 주장하며, 오늘 3월 주주총회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연금에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주문하자 결국 구 대표이사 사장이 한 발 물러섰다.

KT는 구 대표가 첫 번째 임기를 마무리한 지난해 사상 처음 매출 25조원 시대를 열었지만, 연임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빛이 바랬다.

구현모 “차기 대표 후보 권리 포기하겠다”

KT 이사회는 9일 공정성·투명성·객관성을 강화해 공개경쟁 방식으로 대표 선임을 다시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달 10일부터 20일 오후 1시까지 지원자를 모집하고, 압축된 후보 명단은 28일 공개한다. 다음달 7일 면접 심사를 거쳐 대표 후보를 확정하며, 최종 후보는 3월 마지막 주 정기 주총에서 차기 대표로 결정된다.

이사회는 경제·경영, 리더십, 제휴·투자, 법률, 미래산업 분야의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인선자문단을 운영해 사내·외 후보를 검증한다. 사내 이사진은 대표 후보 심사 과정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구 대표도 차기 대표 선출 절차에 참여할 계획이다. 그는 이사회에서 “공개 경쟁을 통해 투명성과 객관성을 증진하하길 기대한다”며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특히 KT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불식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KT 관계자는 “구 대표는 차기 대표 후보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공개 경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회사 내부 분위기는 엇갈린다. 민영화된 공기업 인사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한 점을 비판하며 정면돌파 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부·여당의 반대가 극명한 상황에서 회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외부인사로는 고건 전 국무총리의 아들인 고진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웡회 위원장,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제20대 국회의원으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한 김성태 전 의원, KT 전무 출신으로 삼성SDS 대표를 지낸 홍원표씨, 3년여 전 구 대표와 경합했던 박윤영 전 KT 사장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대놓고 유령 취급, KT 홀대에 연임 결정 번복

이사회가 차기 대표 선출을 원점으로 돌린 것은 여권의 노골적인 구 대표 연임 반대 외압성 언행을 버틸 재간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구 대표는 초대받지 못한 때부터 이상신호가 감지됐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이강철 사외이사가 자진 사퇴하면서 분위기 전환을 기대했으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연초 조직개편을 단행해 기강을 다잡으려고도 해봤지만, 이마저도 정권 눈치를 보다가 뜻대로 하지 못했다.

이달 중순 방한이 예정된 몽골 정부 고위인사가 정부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에도 구 대표의 참석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외국인 최초로 몽골 정부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임명된 구 대표는 ‘첨단산업의 쌀’로 불리는 희토류 수입을 중개하며 특사를 자처했지만 정부의 반응은 냉랭하다.

일각에선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가 일제히 참석하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3’ 행사에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KT 부스만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까지 나돈다. 이 장관은 구 대표와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에서 연사로 섭외된 상태다.

또 검찰,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이 구 대표를 겨냥한 내·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점도 부담이 됐다.

기관투자자 대상 ‘CEO 미팅’ 불참···빛 바랜 사상 최대 매출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거둔 구 대표는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들과 만나기로 했던 대면 미팅도 취소했다.

당초 구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명동의 한 호텔에서 ‘CEO의 올해 및 중장기 전략 방향 제시’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보통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실적 발표 날 진행하는 콘퍼런스콜을 생략하고, 구 대표가 직접 연단에 서기로 했지만 이번 이사회 의결로 취소했다.

KT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3.0% 증가한 25조6500억원으로 1998년 상장 이후 첫 매출 25조원 시대를 열었다. 영업이익도 1조6901억원을 기록해 2년 연속 1조6000억원을 웃돌았다.

한편 재계에서는 KT 다음 타깃이 어디일지 주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정부에서 연임에 성공해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포스코 회장이 거론된다. 또 금융위원회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독립성과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연임 가도를 달리고 있는 금융지주 회장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 이후 금기시된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한 정부 개입이 거세지고 있다”며 “민간기업 이사회의 독립성을 해치고 정부 입맛에 맞는 의사결정을 유도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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