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경제, ‘일자리 있는 침체’

한겨레 2023. 2. 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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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2023년 1월9일 미국 뉴욕 마운트시나이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더 나은 환자 돌봄과 공정한 고용계약을 촉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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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 하비 미국 듀크대 교수는 수익률곡선 역전과 침체의 관계를 처음으로 밝힌 사람이다. 1986년 시카고대학 박사학위 논문에서다. 그는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3개월물 수익률보다 낮아지는 상황이 1분기 이상 지속되면 침체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채 10년물과 3개월물의 수익률 역전 현상은 2022년 10월 말부터 계속되고 있다. 아직 1분기가 지나지 않았지만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추가 금리인상이 예고된 터여서 이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대로 경기침체가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런 하비 교수가 최근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2022년 12월20일(현지시각) 미국 경제 미디어 그룹 마켓워치에 따르면 그는 “이 측정기가 거짓 신호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지표를 발명한 사람이라 흥미롭다. 내년 연착륙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경착륙 아닌 연착륙을 강조한 것은 그의 말마따나 매우 흥미롭다. 그는 기업과 개인의 신중함, 짧은 실업과 노동력 수요, 강력한 소비를 연착륙의 근거로 들었다. 소비자와 금융권이 예전보다 견고해 주택 가격 하락이나 금융 부문의 문제가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또 기업과 가계가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기업은 큰 프로젝트 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저축도 풍부하다는 얘기다.

색다른 침체

‘일자리 없는 회복’이란 문구에 익숙할 것이다. 경기침체는 끝났지만 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경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대침체는 공식적으로 2009년 6월 끝났다. 그러나 실업률이 높아 2016년까지 침체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경제가 성장했지만 수백만 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힘겨운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처럼 이제까지 침체는 높은 실업률과 동반하는 게 상례였다.

현재는 어떤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가 2023년 경기침체를 예상한다. 변수가 있다. 실업률이 역사적으로 낮다. 일자리 증가가 느려지고 있지만 일자리는 여전히 구직자보다 많다. 일자리 없는 회복과 정반대 상황이다. 우리는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실업이 적은 침체’다. 하비 교수가 말했듯 ‘짧은 실업과 노동력에 대한 견고한 수요’가 있는 침체다. 우리는 정말 이상한 침체를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연착륙은 단기적으로 가능하다. 정책 당국자들이 정확한 시기에 올바른 일을 할 때 생기는 드문 사례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다. 천재적 능력을 발휘해서도 아니다. 우연한 성공이다. 어쨌든 그것은 작동하는 듯 보인다.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가 펼쳐지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첫해에 실업률이 치솟았다. 연준은 재정통화정책을 모두 동원해 경기를 떠받쳤다. 덕분에 2021년 초 경제가 정상궤도로 진입하는 듯 보였다. 적어도 위기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인플레이션 조짐이 두드러졌다. 성장 과열이 아니라 공급망 붕괴, 높은 에너지 가격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것이 착시현상을 불러왔다. 제롬 파월을 비롯한 연준 인사들이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 치부한 이유다. 이들은 인플레이션이 지나가는 바람 같을 거라 믿으며 경기부양책을 계속 시행했다. 최대 고용을 물가안정보다 중요시했다. 이런 흐름이 2022년 초까지 이어졌다.

이것이 현재 연준이 비난받는 주요 이유다. 더 이른 시기에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피하거나 최소화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과 같이 견고한 고용시장은 없었을 것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책을 늦췄기 때문에 팬데믹 기간 사라진 일자리가 회복된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 더해 수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옳은 선택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연준의 선택이었다.

풍부한 일자리

노동은 인류 역사 대부분 기간 풍부했다. 출생률이 높았고, 일자리는 별다른 교육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상황이 바뀌었다. 산업혁명은 일을 더욱 기술적으로 만들었다. 인위적 출생률 통제로 가족 규모는 줄었다. 이런 추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바뀌었다. 베이비부머 시대가 출현했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었다. 세계화로 중국·인도 등 인구 대국의 노동력도 충분히 공급됐다. 역사적으로 귀했던 자본의 공급은 최근 급격히 늘었다. 현대 금융시장은 자본의 흐름을 원활하게 했다. 풍부한 노동과 자본의 결합으로 지난 몇십 년 세계는 왕성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2023년 1윌12일 미국 애리조나주 유마에서 건설노동자들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장벽의 훼손된 부분을 보수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지만 일자리는 여전히 넉넉하다. REUTERS

그러나 지금 세계는 과거와 전혀 다른 조합에 직면했다. 자본이 더 풍부해졌다. 연준을 포함한 중앙은행 덕분이다. 돈은 어디든 있다. 노동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 숙련 노동은 귀하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거나 사망하고, 젊은 세대는 아이를 덜 낳는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중국과 인도 등의 풍부한 노동력 공급은 일시적 이벤트에 불과하다.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없다. 그것이 임금이 오르는 이유다. 단순하다. 공급과 수요의 논리다. 구직자가 많으면 사용자는 가장 싼 사람을 고를 수 있다. 인류 역사 대부분 그래왔다. 더 이상은 아니다.

과잉 자본과 희귀 노동이 결합한 경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추세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경기침체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까?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대량 실업 사태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린 침체를 겪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 침체’와 같은 상황은 없을지 모른다.

거대 실업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경제가 어떤 식으로 조정될까? 일자리가 있는 침체의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붐 앤드 버스트’(붐을 이뤘다가 거품이 빠지는 현상) 경기순환 주기의 진폭은 작아질 수 있다. GDP 성장도 지속될 수 있다. 다만 절대수치는 낮을 것이다. 동시에 고물가와 고금리 상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적어도 올해까지는 그렇다.

세 차례 변화

우린 수많은 경기순환을 목격했다. 광기와 공포, 열광과 붕괴는 주기적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몇십 년 두 개의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이른바 정크본드(불량채권)의 탄생과 위험선호 현상의 심화다. 1980년대 정크본드 투자자 마이크 밀켄은 채권시장의 흐름을 일시에 바꿨다. 이전에는 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없던 기업들이 정크본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 고수익채권의 출현으로 지렛대(레버리지) 사용이 일상화했다. 이것은 투자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 됐다. ‘금융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다음은 인플레이션 실종 시대다. 폴 볼커 연준 의장의 활약 시기를 거치면서 인플레이션이 사라졌다. 이로써 40년에 이르는 채권과 주식시장의 강세장이 탄생했다. 인플레이션이 사라지면서 초저금리가 대세가 됐다. 특히 2009~2021년에는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낙관주의가 휩쓸었다. 기업과 투자자에게는 황금시대였다. 자본은 값이 쌌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자산 소유자, 차입자 우위 시장이었다. 위험이 없는 제로금리로 손실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위험자산에 열광했다.

이제 세 번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물가상승률과 금리가 지난 40년 보았던 것보다 명백히 높다. 이 상황이 얼마나 오래,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도 있다. 지금 상황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와는 완전히 다르다. 낙관주의로 빠르게 돌아가거나 ‘쉬운 돈’으로 복귀하기는 힘들다.

비관론이 낙관론을 대체하고 있다. 쉬운 돈∙차입자∙자산 소유자로 특징 지워진 시장은 사라졌다. 지금은 돈을 빌려주는 쪽과 매수자 우위 시장이다. 투자자는 더 높은 수익과 신용을 요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곤경에 빠진 기업이 늘어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4~5%였던 미국의 고수익채권 수익률이 지금 8% 중반에 이른다. 신흥국의 시장금리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고금리를 경제주체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가 문제다. 고금리 압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화할 것이다.

2023년 미국 경제는 연착륙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연준이 금리인하를 시작해 과거의 저금리로 회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얼마든지 거세질 수 있어서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지속되는 경제 환경은 오늘의 경제주체가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이다.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미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고용이 뒷받침하는 연착륙이 가능하더라도 그 기간이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경제주체들이 붕괴한다면 전통적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게 합리적 추론이 아닐까? 물론 그런 상황은 생각보다 느리게 올 수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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