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산소호흡기’까지 달라는 건설사, 미분양 해소 위해 무얼 했나

이미호 기자 2023. 2. 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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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호

“감(感)이죠. 감이 중요해요.”

토지매입과 인허가 등 아파트를 짓겠다고 결정하는 과정은 시행사의 영역이지만 그래도 물어봤다. 유명 아파트 브랜드를 보유한 굴지의 대형건설사니까 나름대로 입지 분석이라든가, 사업성·분양성을 철저하게 따지고 시공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위와 같았다.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을 믿는다는 것인데, 지금의 미분양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짐작케 했다. 실제 대형 건설사 중 이러한 분석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아예 없거나 고작 1~2명에 불과한 곳도 많다고 한다.

지방 미분양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미분양 물량은 한 달 전(11월말)보다 17.1%(1만80가구)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은 6.4%(662가구) 증가한 반면, 지방은 19.8%(9418가구) 늘었다. 건설사가 아파트 착공 전에 사업에서 손을 뗐다거나, 대구시가 신규 주택사업 승인을 전면 중단했다는 소식은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한다.

건설사들은 일찌감치 미분양 해소의 해결책으로 정부 개입만한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위기가 거시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도록”(주택건설협회장) ‘선제적 조치’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공기업이 적정 가격에 직접 매입하거나, 미분양 주택 매수자에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제외하는 등의 강력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설사의 분양 사업을 놓고 업계에선 ‘자전거가 굴러가는 것’(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에 비유한다. 적자가 나든 안 나든 일단 물량을 확보해서 공사를 해야 존재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바퀴를 굴리지 않으면 바로 멈춰버리는 자전거처럼 말이다.

건설사는 아파트를 지을 때 이른바 자기 자산이라는 것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제조업은 공장이나 부지, 기계 및 설비 등 보유 자산이 있지만, 건설사는 자재조차 하도급 업체로부터 공급 받는다. 우스갯소리로 ‘건설사가 도산하면 책상 밖에 안 남는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즉, 건설사는 ‘현장’이 없으면 멈춘다.

하지만 모든 시장에는 등락이 있다. 주택경기가 호황을 이어갈 거라고 막연히 믿은 채 여기 저기에 타워크레인을 세운 결과가 지금의 지방 미분양 사태다. 건설사들은 부동산 PF사태에 이어 미분양 공포까지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과연 지금 정부에 산소호흡기까지 요구해야 하는 상황인지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값이 하락하기 시작한지 이제 1년 밖에 안 됐고, 최근 미국 연준 금리 인상 속도가 더뎌졌다는 점을 눈여겨 본다. 변동금리를 결정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하락세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현금 부자들이 집을 매입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정부가 이미 내놓은 ‘청약 규제 완화’ 정책이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도 봐야 한다. 수도권(최대 3년)과 비수도권(최대 1년)의 전매 제한 기간이 축소됐고, 무주택 요건과 기존 1주택자의 처분 의무도 사라졌다. 또 특별공급 분양가 기준이 폐지됐고, 중도금 대출도 분양가 상관없이 받을 수 있게 됐다. 주택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파트를 더 구입할 수 있도록 문을 연 셈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오는 3월부터 시행된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미분양을 해소하려는 시행사와 건설사의 자구노력이다. 할인 분양과 금융혜택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미분양 털기’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 ‘제 값에 안 팔리니까 좀 도와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행기 티켓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땡처리’로 내놓는다. 빈 좌석으로 두는 것보단 저렴한 가격으로라도 파는 게 이득이라서다.

덧붙이자면 건설사는 앞으로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입지가 좋고 가격 경쟁력이 높은 물건들은 요즘 같은 하락장에서도 잘 팔린다는게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미분양의 무덤이라 불리는 대구에 아파트를 끝없이 올리는 데에는 너도나도 참여한 대형 건설사의 책임이 시행사 못지 않다. 해마다 1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기업들이 어떻게 이걸 예측하지 못했는지 의아하다. 우는 소리 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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