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50억 무죄 판결과 ‘재벌집 막내아들’의 뇌물 정의 [핫이슈]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2023. 2. 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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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계층이 주고 받는
뇌물의 성격 보여준 웹툰
곽상도 무죄 이유 보여주는 듯

어젯밤 늦게 공개된 네이버 웹툰 ‘재벌집 막내아들’ 20화를 보니, ‘엘리트 계층은 어떻게 뇌물을 주고받는가’가 주제였다. 당일 나온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죄 무죄 판결과 묘하게 주제가 겹친다.

웹툰에서 재벌 3세 진도준은 국내 최고 명문 S대 법대에 진학한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신입생 200명에게 대기업 신입 월급의 2배 가격인 신형 노트북을 선물한다. 어차피 이들 중 상당수는 판검사를 비롯한 유력 법조인이 될 터. 그중에서 국회의원도 몇 명 나올 수 있다. 미리부터 자기 편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노트북 선물을 거부한 학생이 몇 명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진도준에게 “그거 뇌물”이라고 한다. 진도준이 “그게 왜 뇌물이 되는데?”라고 묻자 그 학생은 “원래 뇌물은 선불이야. 청탁 들어주고 받는 건 추가로 받는 감사의 선물이지”라고 답한다. 진도준이 “넌 공무원도 아니고 내가 청탁한 것도 없는데”라고 하자, 그 학생은 이렇게 반박한다. “뇌물을 꼭 청탁하기 직전에 주나. 미리미리 몇 년 전부터 뿌리는 경우도 많아. 몇 년 뒤면 난 검찰청 공무원이 될 테니까.” 진도준이 고위 법조인이 될 사람들을 미리 자기 편으로 만들고 이득을 얻기 위해 노트북부터 뿌렸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엘리트 기득권 계층의 뇌물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당장 뭘 바라고 금전적 이득을 제공하는 게 아니다. 5년 후든, 10년 후든 상관없이 언젠가는 도움을 받을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유력자 또는 유력자가 될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 유력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가 돕고자 하는 사람까지도 돕는다. 유력자의 가족이나 친한 친구까지 챙기는 것이다. 바로 이게 최상의 계층이 주고받는 뇌물의 성격이다.

그러나 이런 금전적 이득을 법원이 형법상의 뇌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대가성을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5년 전, 10년 전 제공한 돈이나 물품을 지금 당장의 이득을 얻기 위한 대가로 지급했다는 건 입증이 쉽지 않다. 더욱이 그런 식의 주고받는 관계를 통해 양측은 오랫동안 친분도 쌓았을 터. 친구라서 준 것이라고 법정에서 주장할 것이다. 유력자가 아끼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 건 맞지만, 유력자가 직접 이득을 본 건 없다고 할 것이다.

결국 판사는 심증으로는 뇌물이 맞는데, 증거가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다. 뇌물죄 법리를 소극적으로 적용하는 판사라면 무죄를 선고하고 말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엘리트 계층은 뇌물죄에서 빠져나간다.

어제 있었던 곽상도 전 의원의 무죄 판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대장동 개발 사업자 김만배 씨는 곽 전 의원 아들을 채용해 퇴직금과 성과급 명목으로 50억원(세금 등을 뺀 실수령액 25억원)을 지급했다. 이 돈을 곽 전 의원에게 준 뇌물로 볼 수 있느냐가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뇌물죄 무죄 판결을 받은 곽상도 전 국회의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재판부 역시 뇌물죄 심증은 있었다. 곽 전 의원 아들이 받은 금액이 “연령, 종전 경력, 직급과 담당한 업무, 성과급 액수의 결정 절차 등에 비추어 볼 때 사회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고 했고 “곽 전 의원 아들이 곽 전 의원의 대리인으로서 금품 및 이익이나 뇌물을 수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사정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곽 전 의원 아들이 받은 돈과 이익을 사회 통념상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뇌물죄 요건인 대가성 입증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니 무죄라는 것이다.

판사는 법리를 따라 판결했다고 하겠으나 사회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는 듯싶다. 엘리트 계층이 주고받는 뇌물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또다시 입증됐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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