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악 밀어붙이고, 여성인권 탄압하고… 중동 흔드는 ‘두 스트롱맨’[Global Focus]

김현아 기자 2023. 2. 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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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국제사회 골칫거리’ 이스라엘 네타냐후·이란 하메네이

“인샬라(Inshallah·신이 원하신다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12월, 주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대사관 주최로 텔아비브에서 열린 UAE 국경일 행사에서 연설한 뒤 이렇게 끝을 맺었다. 이슬람교도들이 즐겨 쓰는 문구로, 신이 원한다면 그 어떤 어려운 일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날의 ‘인샬라’는 2023년 1월 UAE의 국빈 방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양국 관계가 정상화된 지 만 2년. 행사 분위기도 따뜻했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전했다. 하지만 훈풍은 한 달 만에 멈추고 말았다.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 장관의 예루살렘 성지 방문으로 아랍권 국가들이 대거 반발했고, 결국 UAE 순방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지리상 이스라엘 오른쪽에 위치한 이란도 역내·외 골칫거리다. 드론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는가 하면, 미국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에서도 계속해서 어깃장을 놓고 있다. 미국의 오랜 맹방이었던 이스라엘과 적국인 이란이 각각 앞다퉈 중동 정세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사실 이들의 이 같은 행보는 복잡한 자국 내 속사정이 외부로 분출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은 우파의 장기집권을 노리며 자국 내 지지세력의 결집을 꾀하고 있고, 이란은 시위대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려 이 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얘기다.

■ 이스라엘, 사법부 권한 무력화 시동

우파 여당이 판사 인사 좌지우지
의회가 대법원 판결 뒤집을수도
2019년 부패혐의 기소 네타냐후
사법개혁 명분 재판 관여 의구심

블링컨 미국무 “민주주의 위협”
텔아비브 곳곳선 ‘반정부 시위’

극우 장관 동예루살렘 성지 방문
이슬람 “도발 행위” 강력 반발도

◇‘극우 클릭’ 네타냐후, 사법개혁으로 기소 무력화 시동 = 지난 4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수도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카팔란 도로를 가득 메운 수천 명의 이스라엘인은 ‘네타냐후 정부는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네타냐후 퇴진”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지난해 총선에서 ‘반 네타냐후 연합’을 구성해 네타냐후 총리와 겨뤘던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의 얼굴도 보였다. 이날 텔아비브 곳곳에 모인 인파만 수만 명으로, 전국적으로는 수십만 명이 운집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들은 네타냐후 총리 주도 이스라엘 우파 연정이 추진하는 사법 개혁에 항의하기 위해 매주 거리로 나서고 있다. 야리브 레빈 이스라엘 법무장관의 사법 개혁안 발표 이후 시작돼 이날로 벌써 5주째다. 네타냐후 총리가 대법원보다 의회에 더 큰 권한을 부여해 사실상 사법부를 무력화하려 한다는 게 시위대의 주장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2월 출범한 이후 ‘사법 개혁’이란 명목으로 법률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실제 대법원을 비롯해 각급 법원 판사 인사를 여당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끔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그동안에는 정부·의회 주도 입법의 적법성을 사법부가 심사할 수 있었지만, 개혁안이 통과되면 이 권한 역시 박탈된다. 대법원이 내린 결정도 의회에서 과반(120명 중 61명 이상) 찬성으로 뒤집을 수 있다.

특히 야당과 시위대는 네타냐후 총리가 범죄 혐의에 대한 기소를 피하기 위해 사법부를 장악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여당이 마음대로 사법부를 주무를 수 있게 되면 2019년 기소된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혐의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 자체를 없앨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전부터 사법제도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비난해온 바 있다. 이에 지난 2일 갈리 바하라브미아라 이스라엘 검찰총장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공문을 보내 “이해 상충 우려가 있으므로, 사법 시스템의 변경 추진에 관여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지난달 30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총리에게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과 제도가 중요하다”며 사법 개혁을 재고하라는 뜻을 전달했다.

집권 초반부터 극우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기 시작한 네타냐후 연정이 우파 정책을 보다 쉽게 추진하기 위해 이 같은 개혁안을 마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 내 정착촌 확장과 서안 병합,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 허용, 성 소수자 배척 등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 정세를 뒤흔들 만한 정책을 제시해 논란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에는 극우 벤그비르 장관이 이슬람교의 3대 성지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동예루살렘 성지 방문을 강행하기도 했다. 동예루살렘 성지에서는 이슬람교도만 기도와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 벤그비르 장관은 유대교도도 이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UAE가 즉각 “심각하고 도발적인 침해 행위를 중단하라”고 비판 성명을 냈고, 요르단도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그 외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이집트 등 아랍권 국가들도 일제히 비난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 당선 ‘일등공신’이 극우파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과격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 이란, 핵 합의 어깃장·러 전쟁 지원

히잡 의문사로 반정부 시위 극심
정부는 구금·고문·사형 등 강경
약혼 뒤 춤추다 10년 징역형 등
이슬람 혁명 뒤 인권시계 거꾸로

여성들 거리서 히잡 벗고 걷는 등
탄압에도 조용한 불복종 시위 중

이란,우라늄농축 등 핵개발 계속
미국과 ‘밀당’하며 인권 비판 돌파

◇서방 ‘어깃장’ 이란, 국제사회의 인권 비판 피하기? = 주제프 보렐 폰테예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지난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 국가로 나아가는 것을 막으려면 이 합의(핵합의)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계속하는 등 핵 개발을 이어가는 데 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란이 미국과의 핵 합의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자국 내 시위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는 인권 대신 국제사회의 시선을 붙잡아 둘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란 인권단체 ‘이란인권운동가들(HRAI)’에 따르면, 지난 9월 마흐사 아미니(22)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로 지난달 말 기준 약 1만9600명이 붙잡혔고 530명이 숨졌다. 이 중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사망한 이들이 최소 4명이다. 보안군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 도중 다쳐 운신이 어려운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보안군이 최근 시위대의 머리나 얼굴 부근으로 발포하는 경우가 늘어나, 수많은 시위대가 실명하는 등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됐다고 전했다. 구금된 이들이 전기 충격이나 성폭행 등 심각한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언도 계속되고 있다.

오는 11일로 이란 이슬람 혁명 44주년을 맞는 가운데 이란의 인권 시계가 국제사회와는 정반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1979년 2월 11일 이슬람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정부는 4년 후인 1983년 ‘히잡법’을 도입했다. 모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히잡과 헐렁한 옷으로 몸을 가려야 한다는 복장 규정이다. 복장 규정 등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도 뒀다. 명칭은 ‘혁명’이었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잘못된 혁명’이었단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남녀 관계에 대한 눈초리도 더욱 매서워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약혼한 사이인 아스티아슈 하기기(21)와 아미르 무함마드 아마디(22)가 테헤란 자유의 탑 옆에서 함께 춤추는 영상을 촬영한 후 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 10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런 와중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돌연 반정부 시위대를 상당수 포함해 수만 명을 사면하기로 했다. 이슬람 혁명 기념일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유엔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전에도 붙잡혔다 풀려난 이들이 갑자기 의문사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 데다, 당국이 이들 유가족의 입을 막기 위해 협박을 가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에 적극 가담한 이들을 붙잡아 고문해 죽음에 이르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꾸미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당국의 탄압이 거세지자 이란 여성들은 ‘조용한 시위’로 시위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보안군의 총포 때문에 조직적인 시위는 대폭 줄었지만, 여성들이 거리에서 히잡을 벗고 다니는 등 ‘일상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시민 불복종’ 형태의 반란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는 한 30대 여성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머리를 가리지 않는 행위를 통해 최소한의 ‘연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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