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하고 탱글… 아! 귀한 살점[이우석의 푸드로지]

2023. 2.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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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제철 만난 ‘아귀’
무엇이든 집어 삼키는 식성 탓
‘굶어 죽은 귀신’이란 이름붙어
흉측한 모습에 버려져 ‘물텀벙’
유럽선 ‘바다의 악마’로 불려
생긴 것과 달리 맛 좋아 대중화
일제강점기부터 마산에서 즐겨
찜·수육… 채소·미더덕 곁들여
프랑스선 아귀간 푸아그라 대용으로
정이품의 생해물아귀찜.

“아귀는 (강경역) 그전에 먼저 내렸고….” 영화 ‘타짜’(2006·감독 최동훈) 중 너구리 형사(조상건 분)의 대사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에 선정된 영화 타짜에는 강력한 도박사 ‘전라도 아귀’(김윤석 분)가 나온다. 아귀란 별명답게 누구나 도박판에서 걸려들면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는 악역 캐릭터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뽐내는 인물이다.

사실 아귀는 맛있는 생선으로 다양한 요리의 주인공이지만, 이처럼 이름부터 생김새까지 흉측한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2월 제철을 맞은 아귀는 다른 생선 종류와는 아예 다른 독자적 ‘족보’를 가졌다. 아귀목 아귓과. 여느 물고기와는 다른 생태 습성과 맛, 식감을 지녔다. 아귀(餓鬼), 즉 ‘굶어 죽은 귀신’이란 이름은 어마어마한 식성 탓에 붙었다. 수면 바닥에 살면서 아무거나 집어삼킨다. 심지어 수면에 다가온 물새까지도 잡아먹는다고 한다. 가끔 낚은 아귀 배 속에서 생선이 몇 마리나 그대로 나올 때도 있다.

제철 만난 아귀.게티이미지뱅크

이름처럼 아귀는 무서운 형상이다. 커다란 입에 날카롭고 빽빽한 이빨을 둘렀다. 아귀 이빨은 지퍼처럼 치밀하게 닫히는 까닭에 다른 작은 생선이든 낚싯바늘이든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 가끔 TV 다큐멘터리에는 심해에 사는 아귀가 등장해 신비스러운 그들만의 생태를 알려준다. 어두운 심해 바닥에 사는 초롱아귀는 호롱불처럼 빛을 발하는 기다란 가시를 흔들어 다른 물고기를 꾀어낸 다음 덥석 삼켜버린다. 일반적 아귀도 대가리에 먹잇감 유인용 가시를 장착하고 있다. 이 같은 습성 덕분에 영어권에선 아귀를 낚시꾼 물고기(Anglerfish)라 부른다.

태평양 연안에 사는 황아귀종이 우리가 즐겨 먹는 아귀다. 유럽에선 황아귀를 수도사 물고기(monkfish)라고도 부른다. 황아귀의 생김새가 중세 수도원에서 후드를 쓴 어두운색 옷을 입은 수도사처럼 보인 데서 붙은 별칭이다. 생김새 탓에 예전에는 잡히는 족족 죄다 버렸다. 올라오자마자 바로 뱃전에서 바다로 던져버렸대서 ‘물텀벙’이라 이름 붙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강원과 경상 동해안에선 ‘물꿩’이라 불렀다. 이는 꿩처럼 맛이 좋대서 붙은 이름이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작명이다.

실제 먹어보면 맛이 아주 좋다. 일반 생선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마치 갑각류 꼬리 살 같다. 양념 때문에 잘 모르지만 오래 씹으면 은은한 단맛도 난다. 가시가 이리저리 박혀 있지만 잘 다루면 포식자답게 제법 두툼한 살덩어리를 발라낼 수 있다. 식감이 좋아 콩나물, 미나리, 미더덕(오만둥이), 조개 등과 함께 매콤하게 볶아놓으면 불고기, 닭볶음 등 고기 요리에 못지않다.(사실은 자작하게 볶았지만 찜이라 부른다.) 요즘은 얼얼하고 매콤하지만 원래는 된장을 썼다고 한다.

아귀는 전국적으로 대중화된 인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 별미다. 바싹 말린 건아귀를 불려서 조리하는 것이 전통인 창원 마산 오동동에 아구찜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인천에도 용현동 물텀벙거리가 있다. 군산과 서천에도 아귀찜을 파는 집이 많다. 서울에는 종로 낙원동과 강남 신사동에 아귀찜 골목이 있고, 곳곳에 잘한다는 아귀찜 전문점을 찾아볼 수 있다. 물에 텀벙 던져 버렸다던 아귀의 재탄생이다.

동해안의 아귀수육.

우리가 아귀를 요리로서 상식한 역사는 짧다고 한다. 정약전은 흑산도에 살았으니 분명히 봤을 테지만 자산어보에도 이름(餓口魚) 이외엔 습성이며 조리법이 한 줄도 언급되지 않는다. 허드레 생선이던 아귀를 물에 불려 요리해 봤더니 꽤 괜찮은 맛이 났고 이에 대중화됐다는 이야기가 마산(창원)에 내려오고 있다. 서해안 군산, 인천이나 동해안에서도 먹었지만 향토 요리로 정형화되지 않았던 것이, 일제강점기부터 마산에서 ‘아구찜’으로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아귀찜은 사실 ‘콩나물찜’으로 불릴 만큼 살코기양보다는 채소의 비중이 높은데 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특히 연근해에서 잡히는 아귀가 귀해지면서 나오는 양에 비해 값이 비싸졌다는 뜻이다. 식사용보다는 보통 술안주로 많이 찾는데 마지막에 양념을 거둬 밥을 볶아 먹는 것으로 허전함을 달래곤 한다.

아귀는 의외로 해외에서도 많이 먹는다. 아귀를 다양한 요리에 쓰는 일본은 물론, 유럽에서도 다채로운 요리에 적용한다.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아서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한때 ‘바다의 악마’로 부르며 잡으면 바다로 던져버렸다고 하니 유럽의 ‘물텀벙’이었던 것은 똑같다. 영국은 자국의 대표 요리 피시 앤드 칩스에 아귀를 쓰기도 한다. 흰 살만 발라 튀김옷을 입혀 튀긴다. 소금구이로 먹기도 하고 베이컨에 말아 굽기도 한다.

값비싼 치즈 못잖은 맛을 내는 아귀 간.

프랑스에서는 부야베스에 아귀를 쓰는 등 스튜 요리에 이용하는데, 특히 아귀 간은 푸아그라의 대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푸아그라는 거위에 사료를 엄청나게 먹여 ‘지방간’으로 만드는 것인데 아귀는 저 스스로 많이 먹어대니 원리는 비슷하다. 기름지고 고소한 맛에다 혀끝에 와닿는 부드러운 식감으로, 프렌치 정찬 코스에서 화이트 와인과 함께 곁들이는 최고급 재료로 쓰인다. 참고로 아귀는 프랑스어로 ‘롯(lotte)’이다. 우리나라 롯데그룹과 철자가 같다. 롯데제과와는 별 상관없지만 롯데마트나 롯데호텔 모모야마에선 요즘 같은 제철에 생물아귀나 아귀 요리를 판매한다.

아귀는 다양한 부위를 먹는다. 일본에서는 아귀 간을 안키모(あん肝)라 부른다. 값비싼 치즈 못잖은 부드럽고 녹진한 맛을 내는 고급 안줏감이다. 아귀 위장도 쫄깃하니 아주 맛이 좋다. 곱창처럼 단단한 식감이지만 느끼함이 적어 그대로 수육으로 즐길 수 있다. 쥐포보다 부드러운 아귀포도 인기다. 예전엔 마산 어시장이나 가야 살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건어물 전문 호프에서 아귀포를 맛볼 수 있다.

추위도 조금 물러간 요즘 제철을 만난 매콤한 아귀찜이 입맛을 자극한다. 향긋한 이른 봄의 미더덕까지 합세하면 더욱 완벽한 궁합으로 매력을 뽐낼 테다. 젓가락 휘휘 젓다 한 점 집어 그 뽀얗고 탱글탱글한 살을 씹을 생각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는 어느 늦은 겨울날이다. 그나저나 강경역에서 먼저 내린 그 전라도 아귀는, 아마도 아귀찜을 먹으러 가지 않았을까 한다. 논산에는 아귀찜을 잘하는 집이 몇 집 모여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오동동아구할매집 = 아귀찜의 본향, 마산에서도 공히 원조로 치는 집이다. 주소도 아귀찜 길이다. 꾸덕꾸덕 말린 건아귀에 된장을 쓰는 정통 마산식이다. 특유의 씹는 느낌을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요즘 화끈한 양념 아귀찜이 인기지만 이 집은 그리 맵지 않아 속이 편하다. 세태에 따라 요즘은 생아귀찜도 팔고 아귀수육, 아귀불갈비 등 다른 메뉴도 함께 판다. 2만5000원부터. 창원시 마산합포구 아구찜길 13.

◇다정생아구찜 = 이 집도 마산에 있다. 그 사실로도 충분한 가게 설명이 된다. 이름처럼 생아귀를 내세우는 집이다. 아삭한 콩나물 속에 커다란 생아귀 살점이 가득 들었다. 생아귀는 폭신폭신하다. 큼지막한 간을 비롯해 내장과 존득한 껍질이 곁들여진 수육을 바라보면 역시 마산이 아귀의 메카임을 상기시킨다. 생아구찜. 2만5000원부터.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308.

◇정이품 = 해물을 곁들인 아귀찜을 내는 집이다. 제철 해물을 곁들여 수북이 쌓아 올린 모양새가 먹기 전부터 손님을 압도한다. 껍질과 살을 절묘하게 잘라낸 생물아귀의 살점도 존득하다. 구수한 양념이 살점과 콩나물에 잘 배어들어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담백하게 쪄낸 수육도 갖은 부위의 맛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좋다. 생아귀찜 6만 원. 생아귀수육 5만 원(예약). 고양시 일산서구 대산로212번길 14.

◇원조마산아구찜 = 서울 낙원동 아귀찜 골목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집. 적당히 칼칼한 양념에 해물까지 곁들여 볶아낸 아귀찜 메뉴가 인기다. 매콤한 콩나물과 함께 아귀 살을 집어 먹다 마지막으로 남은 국물에 밥을 비비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저녁이면 인근 회사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생아귀를 쓴다. 4만 원부터. 서울 종로구 수표로 132.

◇동해안 = 활아귀회를 파는 집이다. 서울에선 좀처럼 먹기 힘든 아귀회와 수육을 묶어서 각각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넉넉히 채소를 곁들여 갖은 부위를 불판에 올리고 즉석에서 쪄낸 수육은 부드럽고 쫄깃해 매운맛을 꺼리는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식초를 살짝 뿌린 간장과 딱 어울린다. 7만 원.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305-56 라페스타D동 112호.

◇키엔오 = 서울 구의동에서 이름난 이자카야(居酒屋)다. 싱싱한 제철 식재료를 구해다 근사한 솜씨로 손질해 다양한 맛을 내는 집으로 유명하다. 단품이나 오마카세(주방장에게 맡기는 메뉴)로 이용할 수 있는데 그때그때 달라진다. 요즘 운이 좋다면 제철을 맞은 아귀 간(안키모)을 맛볼 수 있다. 부드러운 식감의 간에 오로시(강판에 갈아낸 무)를 곁들여 낸다. 1만2000원.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 55길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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