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젤렌스키 전투기 지원 요청에 “논의 못할 것 없다” 화답

노지원 2023. 2. 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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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침공]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현지시각) 영국 도싯의 룰워스에 있는 군사 시설을 방문했다. 지난주 이곳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영국의 주력 전차인 ‘챌린저 2’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리에겐 자유가 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날개를 달라.”

8일(현지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국 런던을 깜짝 방문해 웨스트민스터홀에서 연설하던 도중 린지 호일 영국 하원 의장에게 실제 우크라이나 조종사가 사용하던 헬멧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헬멧에 적힌 문구를 직접 읽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날개’인 전투기를 지원해 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영국인들에게 가장 알기 쉽고 강렬한 방식으로 전달한 것이다. 청중들은 크게 박수를 쳤다.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국을 떠나 해외를 찾은 것은 미국, 폴란드에 이어 영국이 사실상 두 번째다. 그는 전쟁 직후인 지난해 3월8일 영국 하원에서 진행된 화상 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국민들의 항전 의지를 북돋웠던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1940년 6월4일 연설을 인용해 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그의 선언 이후 국제 여론이 극적으로 변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지원이 시작됐다.

앞서 영국·미국·독일 등 서방이 지난 1월 말 우크라이나에 주력 전차를 지원하기로 결단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곧바로 미국산 F-16 등 전투기 지원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국·독일은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난색을 보였지만, 영국의 이날 반응은 크게 달랐다.

리시 수낵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영국이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들의 훈련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전투기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끝난 뒤 벤 월러스 국방장관에게 영국이 지원할 수 있는 전투기를 찾아볼 것을 요청했다. 수낵 총리는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영국의 훈련 지원이 “첨단 항공기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첫 단계”임을 확인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있어서도 “협의하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전투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음을 직접 시사했다.

수낵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그는 “몇 년, 몇달이 아니라 다가오는 며칠, 또는 수주 안에 (군사 장비들이) 전선에 닿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영국이 지원하는 주력 전차 ‘챌린저 2’를 다루는 훈련을 위해 지난주 영국에 도착한 우크라이나군은 내달 훈련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간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주영국 러시아 영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유럽과 전 세계에 군사적, 정치적 후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수낵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8일 저녁과 9일 잇달아 유럽 정상들을 만나 “장거리 미사일” 등 현안에 대해서 논의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영국이 마침에 우리의 말을 들어줘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른 나라들도 장거리 미사일에 있어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파리로 이동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회동한 뒤, 9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로 향한다. <로이터> 통신은 그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도 만난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런던 방문을 통해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세계적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옛 의회 건물인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연설한 몇 안 되는 세계 정상에 속하게 됐다. 이날 연설에는 수낵 총리는 물론 리즈 트러스, 보리스 존슨, 테레사 메이 등 전직 총리도 참석했다. 청중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입장할 때부터 연설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박수를 보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존슨 전 총리에게 그가 “완전히,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는 때에 사람들을 뭉치게 했다”며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후 버킹엄궁으로 이동해 찰스 3세와도 만났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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