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미지와의 조우…사우디아라비아 ①
(알울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는 천의 얼굴을 지닌 나라다.
한여름 최고기온 5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있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해발 3천m가 넘는 고지대에서는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겨울에는 눈도 만날 수 있다.
전 세계 다이버들이 꿈의 다이빙 장소로 여기는 홍해와 사막 한가운데 기암괴석의 바다를 만날 수 있는 알울라 지역은 거역할 수 없는 매력을 선사한다.
비현실의 극치 알울라
수도 리야드에서 서북쪽으로 1천100km 떨어진 알울라(AlUla) 공항에 내리자마자 발견한 것은 수많은 기암괴석들이었다.
알울라는 5억 년 전에 형성된 거대한 붉은 사암(砂巖) 암석들이 둘러싼 곳이었다.
마치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에 내린 듯한 느낌을 줬다.
누군가 높은 사람을 마중 나왔는지 'VIP'라고만 쓰인 번호판을 단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여객기 바로 앞까지 와 기다리는 장면도 신기했다.
승합차에 올라 리조트 단지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기암괴석급 바위기둥들이 눈앞으로 들어왔다.
국내에 있었다면 그럴싸한 이름을 제각각 하나씩 얻었을 만한 바위들이 이곳에서는 바다를 이루고 있을 만큼 많았다.
일행들은 그런 바위들이 지나갈 때마다 각기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용두암, 할미바위, 학소대, 베틀 바위…" 이름짓기는 곧 그만둬야만 했다.
의미가 없을 만큼 많은 기암괴석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오아시스에서 만난 비키니 관광객들
최근 이곳에서 인기가 높다는 하비타스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극에 달한 느낌이었다.
기암괴석들 사이에 오아시스가 펼쳐지듯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수영장이 자리 잡고 있었고, 비키니 차림의 서양 여성들이 선탠하고 있었다.
흔히들 사우디는 여성들이 반드시 히잡을 쓰고 다녀야 할 만큼 율법이 강하다고 알고 있지만, 이런 풍경을 보니 고정관념이 깨지는 느낌이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사우디 비전 2030' 발표를 기점으로 사우디를 찾는 유럽 여행자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과거엔 관광 비자 발급을 꿈도 꾸기 어려웠지만, 사우디 정부가 전자 비자 제도를 도입한 뒤로는 관광객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하비타스는 신혼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는 리조트로, 최근 알울라에서 가장 핫한 곳으로 꼽힌다.
1박에 100만 원이 넘는 고급 리조트다.
하비타스 인근에는 반얀트리가 기암괴석 아래에 하나씩 리조트를 짓고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객실은 프라이빗 풀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하비타스 리조트 가격의 두 배가 넘는다.
유럽의 부호들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사우디에서는 공공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지 못하고 몸을 가리는 '부르키니' 수영복을 착용해야 하나 개인 수영장이나 리조트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알울라의 상징 코끼리 바위
알울라에서 빠뜨리면 안 될 상징물 가운데 하나는 코끼리 형상의 거대한 코끼리바위(Elephant Rock)다.
높이 52m에 이르는 거대한 코끼리바위는 호주의 울룰루처럼 그 자체가 하나의 단일 암석으로 구성됐다.
수백만 년 시간에 걸쳐 오직 바람과 물에 의한 침식 등 자연적인 힘에 의해서만 형성됐다.
때마침 석양이 되자 풍경을 휴대전화로 담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코끼리바위 앞에 군대 참호 식으로 모래땅을 판 뒤 소파를 넣어 만든 휴식공간은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저곳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모습을 곁눈질하다 보니 정말 이곳이 사우디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트라'같은 유적이 100여개…헤그라
다음날 찾은 곳은 나바테아인들이 만든 헤그라 지역의 비밀 무덤이었다.
버스를 갈아타고 현장에 도착하니 마치 요르단의 페트라에 있는 알카즈네 신전을 떠올릴 만한 신비한 제단 형식의 거대한 조각들이 사막 한가운데 펼쳐졌다.
헤그라에서는 바위산을 깎아 만든 나바테아인들의 무덤 건축물이 110여 개가 발견됐다.
페트라와 비슷한 형식의 건축물로, 가장 큰 건축물은 '카스르 알파리드'(Qasr AlFarid)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다. 거대한 바위의 한쪽 면을 부조로 파낸 이 건축물은 지붕 부분에 독수리 또는 뱀 등이 조각돼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대부분의 다른 건축물과 비슷했는데, 가장 위쪽에 조각된 5개의 계단은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를 뜻한다.
알울라는 고대의 기원전 6세기부터 형성된 다단(Dadan) 왕국의 수도이자, 기원전 3세기부터 요르단과 사우디 일대에 존재했던 나바테아 왕국의 남쪽 도시였다.
두 왕국 모두 사막의 대상무역으로 큰 도시다.
아라비아반도 남쪽의 예멘 등을 통해 아시아의 향신료와 유황 등이 들어와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흘러갔다.
알울라의 알디완(Al-Diwan)은 가로세로 12.8 x 9.9m 면적과 8m 높이의 거대한 사각형 방이다.
바위 내부를 깎아내 마치 천연 스튜디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거실(Diwan)이라는 뜻을 가진 이 장소의 용도는 나바테아의 통치자들을 위한 회의실 또는 종교적인 회합을 위한 장소 등 여러 가지로 나뉜다.
바로 앞에는 남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인 알시크(Al-Siq)가 있다.
좁고 깊은 암석으로 둘러싸인 벽에서는 암각화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요르단의 페트라 앞에도 이와 같은 알시크가 있다는 점이다.
요르단의 페트라는 수직으로 깊게 난 바위틈을 통해 나아가면 알카즈네 신전을 만날 수 있는데, 사우디도 좁은 알시크 통로 끝에 회합 장소인 알디완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네옴 모델하우스' 마라야 콘서트홀
알울라 지역의 사우디 사막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것은 거대한 거울 같은 건물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뭔가 사막의 신기루가 만든 듯한 비현실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건물 전체가 거울처럼 주변 모습을 비추는 물체로 둘러싸인 5층 높이의 대형 건물이다.
이 건물은 사우디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더 라인'(The Line)과 외양이 닮은 거울형 건물 '마라야 콘서트홀'이다. 500석 규모의 홀을 갖춘 이 건물에서는 2019년 일 디보, 야니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알울라 지역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네옴시티 개발사업은 총사업비 5천억 달러(약 700조 원) 규모의 메가 프로젝트다.
사우디는 북서부의 타북 주(州)의 2만6천500㎢ 부지에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하는 네옴시티 내 선형도시인 '더 라인'을 짓고 있다.
폭 200m 높이 500m의 선형 구조물을 총연장 170km 길이로 지어 그 안에 사람이 살고, 나머지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전한다는 게 사우디의 구상이다.
마라야 콘서트홀은 더 라인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모델하우스라고 보면 될 듯하다.
멀리서 볼 때는 거대한 사막의 모습을 반영하면서 주위 환경과 잘 구분이 되지 않아 묘한 느낌을 줬다.
마치 미래에서 온 거대한 4각형의 우주선 같다고나 할까.
가까이 다가가 옆쪽을 바라보니 거울에 비친 사막의 모습이 완벽한 데칼코마니가 이뤄졌다.
네옴에 대한 관심 덕분인지 현지인들도 차에서 내려 휴대전화로 모습을 담기 바빴다.
솔직히 네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실현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지만, 사막 한가운데서 이런 건물을 직접 접하니 불가능할 것도 없겠다는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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