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똥만 싸도 탄소를 줄인다…이 소중한 생명을 우리는

남종영 2023. 2. 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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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싸우는 고래|① 부작용 없는 탄소 포집기
기후위기 극복 ‘자연기반해법’ 떠오른 고래 보호
인도양 스리랑카 바다에서 대왕고래가 헤엄치고 있다. 대왕고래는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로, 해저에 탄소를 격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바다 속에 눈이 내립니다.

한때 바다 위에서 열심히 광합성한 식물성플랑크톤, 작은 크릴 같은 동물성플랑크톤 그리고 물고기의 똥이 나풀거리며 바다 밑으로 떨어집니다.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아서 ‘바다 눈’(marine snow)이라고 하죠. 단번에 과학자들을 사로잡은 이 장면을 연출한 숨은 감독은 ‘고래’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자연기반해법’(NBS∙Nature Based Solution)이 떠오르고 있어요. 자연기반해법은 자연을 보전∙관리∙복원하거나 자연 작용을 활용하여 탄소를 저감하는 일을 통틀어 말하죠. 지난해 12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총회(COP15)에서도 주요 대안으로 거론됐고요.

이와 관련해 많은 과학자가 고래의 탄소 저감 능력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고래가 기후변화를 막고 있다’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죠?

고래는 두 가지 방식으로 탄소 저감에 기여해요. 첫째, 고래의 몸이 탄소를 저장하는 수단이 되는 거예요. 100년 넘게 사는 고래가 탄소를 오랜 기간 품고 죽으면 그 자체가 거대한 탄소 저장고가 되는 거예요. 둘째는 고래의 똥이 탄소를 격리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오늘은 두 번째 방식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부작용 없는 탄소 포집기

아까 ‘바닷속에서 내리는 눈’의 장면을 연출한 게 고래라고 했죠? 조금은 어려우니 차근차근 따라오세요.

고래, 그중에서도 대왕고래, 혹등고래 같은 대형고래는 엄청나게 큰 동물이에요. 지구 최대를 자랑하는 대왕고래는 몸길이가 20m가 넘고, 몸무게는 150t을 웃돌죠. 그럼… 똥도 당연히 크겠죠?

이렇게 큰 똥에는 철과 인, 질소 등 영양분이 풍부해요. 그래서 고래가 똥 싼 곳엔 식물성플랑크톤이 번성해요. 식물성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건 아시죠? 이렇게 저장한 탄소를 가진 식물성플랑크톤은 동물성플랑크톤에게 먹히거나 아니면 다른 미세 영양분과 함께 아주 천천히 바다로 가라앉아요. 그걸 바다 눈이라고 하는 거죠. 바다 눈은 해저에 쌓이겠죠? 탄소도 여기에 저장되거나 격리되는 거예요. 바다 깊은 곳에 있으니, 공기 중으로 노출돼 온난화에 영향 미칠 일은 없겠죠?

고래는 바닷속에서 위아래를 왔다갔다하면서 이 작용을 강화합니다. 광합성이 되지 않는 깊은 바다(혼합층 이하)에서 먹이를 먹었을 때도, 똥을 싸러 꼭 해수면 근처로 올라와요. 왜냐고요? 깊은 곳에선 압력 때문에 똥을 못 싼답니다. 즉, 고래의 수직 운동이 식물성플랑크톤 생성량을 배가하고, 결과적으로 탄소 격리량을 늘리는 거죠. 이걸 ‘고래 펌프’라고 해요. 

그래픽_소셜미디어팀

이해가시나요? 안 되면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세요. 고래가 죽음과 똥으로 탄소를 저장∙격리하는 메커니즘이에요. 5분쯤 보면 득도… 아, 아니,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동시에 귀신고래나 혹등고래 같은 수염고래는 여름에는 차가운 아북극 바다에서 먹이를 풍성히 먹고, 겨울에는 따뜻한 아열대 바다로 가서 새끼를 길러요. 고래의 계절성 회유를 통해 바다의 영양분이 교환되는 겁니다. 여름에 아북극 바다에서 든든히 먹은 고래는 여름에 저위도로 내려와 피부 각질과 똥 등을 풀어놓죠. 역시 물고기, 청소동물, 플랑크톤이 번성하고, 곧 탄소 흡수와 격리로 이어지죠. 이러한 고래에 의한 영양분의 수평 이동을 ‘고래 컨베이어벨트’라고 해요.

고래가 늘어난다면, 좋은 변화가…

기후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인류가 18~19세기에 벌인 막대한 포경 때문이란 걸 아시나요?

하이디 피어슨 미국 알래스카대 사우스이스트 캠퍼스 교수 등은 지난해 12월 학술지 <최신 생태와 진화>에 대형고래 보전과 복원이 기후위기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본 과거 연구들을 검토한 논문을 올렸습니다.

과거 연구 결과를 볼까요?

남극해 서식 대형고래 4종(대왕고래∙참고래∙혹등고래∙밍크고래)을 대상으로 ‘고래 펌프’에 의한 탄소 감축 기여량을 추정했어요. 만약 포경시대 이전으로 4종의 개체수가 회복된다면, 한해 2억2천만톤의 탄소가 해저에 고정된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어느 정도 양인지 감이 안 잡힌다고요? 현재 한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 1 정도예요.

그래픽_소셜미디어팀

남극해 서식 향고래 한 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포경시대 이전으로 개체수를 복원하면 탄소 240만톤을 해저로 운반할 수 있다고 나와요.

연구팀은 “현재까지 5개 연구에서 고래의 탄소 감축 기여량을 정량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부 종과 지역을 대상으로 이뤄져 정확한 값으로 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지요. 고래의 탄소 감축 기여는 이보다 훨씬 클 수 있겠죠.

연구팀은 강력한 보전 정책을 통해 대형고래의 탄소 제거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물에 걸리는 혼획을 줄이고, 핵심 서식지에서 선박 속도를 제한하고,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하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해요. 이들은 “인공적으로 포집한 탄소를 해저에 주입해 저장하는 것 같은 기후공학적 해결책보다 고래 복원은 위험도가 적고 지속성과 효율성은 높은 사업”이라고 밝혔어요. 한국은 2025년부터 동해 가스전에 탄소를 주입∙저장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죠. 그보다 밍크고래 불법 포획부터 단속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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