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디알로고] 애썼다 생쥐야, 신약실험 이제는 미니장기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23. 2. 9. 07:01 수정 2023. 2. 9. 16: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니臟器 ‘오가노이드’세계적 연구자 구본경 박사
미FDA, 신약의 동물실험 의무 조항 삭제
생쥐 희생하지 않고 대체실험으로도 가능
미니장기로 연구 속도 높이고 비용 절감 기대
관련 특허가 선진국 시장의 무역장벽 될 수도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부연구단장은 지난 6일 대전 본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 FDA의 동물실험 의무 조항 삭제가 제약바이오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IBS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미 식품의약국(FDA)의 동물실험 의무화 규정을 삭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앞서 미 상원은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1938년 이래 지속된 동물실험 의무화 규정이 84년 만에 삭제됐다. 이제 미국 시장을 겨냥해 신약이나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를 개발할 때 생쥐나 개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 대신 다른 대체시험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도 된다.

구본경(46)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부연구단장은 지난 6일 대전 본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 FDA가 보수적인 접근을 하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굉장히 큰 변화”라며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대체시험이 또 다른 무역 장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 FDA의 수석과학자인 나만자 범푸스 박사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우리는 과학적으로 타당하고 의약품의 안정성과 효능을 보이는 필수 데이터를 제공하는 대체시험을 지지한다”고 했다

구본경 박사는 대체시험 방법으로 가장 주목을 받는 오가노이드(organoid)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과학자이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장이나 간, 위와 같은 장기처럼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장기(臟器) 모사체 또는 미니 장기라고 불린다. 이전에는 인체 세포를 평면 배양접시에서 키워 인체 내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구 박사는 지난해 글로벌 학술정보업체인 클래리베이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CR)’에 선정됐다.

◇미니 장기로 세포실험의 한계 극복

–동물실험 퇴출은 이제 대세인가.

“이미 화장품 업계에서는 동물실험이 퇴출되고 곧 대체시험만 쓰기로 했다. 최근 오가노이드를 비롯해 여러 대체시험 방법들이 발전하면서 신약개발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진 것이다. 해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실험동물 수억 마리가 희생된다. 그럼에도 신약후보 10개 중 9개가 인체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가지 못해 시간과 비용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동물실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가.

“우리가 쥐의 노화나 암을 해결하려고 연구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바로 사람에게 시험할 수 없어 그 전에 안전성과 효능을 먼저 생쥐에게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생쥐는 사람과 다르다.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도 있지만 쥐보다 1만배는 더 비싸다. 인간을 잘 반영하면서도 저렴한 시험 수단 중 하나가 오가노이드이다.”

–동물 희생이 부담이 된다면 인간 세포를 이용한 실험도 있지 않나.

“일반 세포는 배양 과정에서 노화가 일어나고 죽는다. 그래서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로 실험하기도 하지만 이미 돌연변이가 일어난 상태라 실제 인체를 반영하기 어렵다. 반면 줄기세포는 무한 증식하면서도 돌연변이가 없고, 인체의 다양한 장기로 자라는 시조(始祖)세포이다. 오가노이드는 이런 줄기세포로 만들어 세포 실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생쥐는 몸 전체 반응을 알 수 있지만 오가노이드는 특정 장기만 반영하지 않나.

“맞는 말이다. 동물실험의 가장 큰 목적은 큰 목적은 유효성 평가와 독성 시험인데, 각종 장기 오가노이드를 대량으로 만들어 시험하면 신약후보물질 100만개 중 몇 개를 계속 개발해야 할지 생쥐보다 빨리 알아낼 수 있다. 신약 개발이 더 빨라질 수 있다. 물론 오가노이드를 대량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부연구단장. 구 박사는 환자 자신의 성체줄기세포로 만든 미니장기는 맞춤형 신약 개발에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IBS

◇환자 맞춤형 신약 시험도 가능

–오가노이드가 일반 세포와 다른 것은 무엇인가.

“세포를 단순히 입체로 배양한 것보다 줄기세포를 활용해서 실제 장기 구조를 잘 반영한다는 점이 다르다. 장기는 일종의 닫힌 구조이다. 안팎 구분이 있다. 소장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장 분비물나 배설물이 안으로 모인다. 그만큼 인체를 잘 반영한다.”

–원료에 해당하는 줄기세포는 다 같은가.

“두 가지가 있다. 지금 우리 몸 곳곳에 있는 성체줄기세포가 있고, 다자란 세포를 발생 초기 상태로 되돌린 유도만능줄기세포가 있다. 유도만능줄기세포 오가노이드 분야는 처음 개발한 일본과 미국이 세고, 성체줄기세포 오가노이드 분야는 내가 연구한 네덜란드가 강하다.”

–줄기세포마다 쓰임새가 다른가.

“인구 집단을 대표하는 유도만능줄기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모든 사람에게 시험결과를 적용할 수 있다. 반면 특정인의 성체줄기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는 그 사람을 잘 반영한다. 나만의 신약과 치료법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다.”

–환자 맞춤형 신약 개발도 가능하겠다.

“문제는 경비이다. 돈 많은 사람은 자신의 암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수만 가지 약물을 시험해볼 수 있다. 그냥 기업에만 맡기면 이처럼 과학 연구가 빈부 격차와 수명 격차까지 부를 수 있다. 과학자에겐 시험방법을 좀 더 표준화시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로 만들 의무가 있다.”

줄기세포로 만든 생쥐 소장 오가노이드. 실제 소화기관처럼 안쪽에 소장 분비물과 배설물이 모인다./IBS

◇코로나 백신처럼 특허권이 발목 잡을 듯

–오가노이드의 응용분야가 늘고 있다고 들었다.

“최근에는 특정 장기를 만드는 것을 넘어 수정 이후 발달 중인 배아(embryo) 상태를 만드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배아 오가노이드라고 해서 엠브로이드(embryoid)라고도 부른다. 이는 농·축산업에서 큰 의미가 있다. 경주마로 성공했다가 은퇴한 종마(種馬)는 한 번 정자를 제공하는데 1억원씩 받는다. 종마 줄기세포로 배아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언젠가 누구나 종마를 가질 수 있다.”

–동물 진화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는데.

“고래 초기 배아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 고래 배아 오가노이드로 만들어 진화 계통상 가까운 하마 또는 대동물인 코끼리와 비교할 수 있다. 화성에 정착하러 갈 때 방주처럼 동물 수정란 오가노이드를 가져갈 수도 있다.”

–오가노이드가 보편화되면 특허가 중요하겠다.

“네덜란드 한 업체가 성체줄기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기술에 대해 특허를 갖고 있는데, 이미 10대 글로벌 제약사에게 기술료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mRNA(전령리보핵산) 코로나 백신도 특허권 때문에 화이자, 모더나만 돈을 벌었다. 대체 시험이 확산하면 그 자체로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제약바이오 기술을 전략자산으로 보호하려는 움직임에서 보듯 바이오가 21세기의 핵무기가 될 수도 있다. "

–장기 칩(organ on a chip)도 대체 시험 방법으로 유망하지 않나.

“장기 칩은 플라스틱 기판에 체액이나 혈액이 오가는 미세 회로를 만들고 그 안에 장기 세포를 넣은 것이다. 여기에 물리적으로 장기 기능을 부여한다. 이를 테면 허파 칩의 경우 진공펌프로 숨을 쉬듯 수축, 이완을 시키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칩에 세포 대신 오가노이드를 넣은 오가노이드 칩도 개발됐다.”

유전자마다 다른 형광색을 내도록 했더니 생쥐 소장이 모자이크처럼 여러 가지 색이 섞인 형태로 나타났다(왼쪽). 2주가 지나자 암유전자를 넣은 부분(붉은색)이 대부분을 차지했다(오른쪽). 아직 암이 발생하지 않아도 암유전자가 득세한 것이다./IBS

◇원천기술 확보해야 시장 선점

–연구 속도가 무척 빠르다.

“처음 쥐의 오가노이드가 나온 게 2009년이다. 배아 오가노이드는 2015~2016년 무렵에 나타났다. 장기 칩이 2010년 처음 나왔고 최근 오가노이드 칩으로 발전했다. 앞으로 10년 안에 보편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기업들의 연구자 유치 경쟁도 치열하겠다.

“네덜란드 후브레흐트 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할 때 지도교수였던 한스 클레버스 박사가 작년 스위스 제약사 로슈로 자리를 옮겼다. 클레버스 박사는 성체줄기세포로 처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정년을 앞뒀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는데 최근 나와 경쟁하던 젊은 박사도 미국 제넨텍에 영입돼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앞으로는 다른 연구를 한다고 들었다.

“지도교수였던 클레버스 박사는 어쩌면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배웠으니 못 받는다. 과학자가 정말 잘 되려면 미래는 무엇이 될까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오가노이드는 이미 실용화 단계에 들어갔다고 보고 새로운 분야인 모자이크 유전학에 도전하려고 한다.”

–모자이크 유전학이 무엇인가.

“세포를 유전자에 따라 각각 다른 형광색으로 표시하고 암유전자가 있는 부분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하는 연구이다. 처음엔 모자이크처럼 여러 색이 보이다가 갈수록 암유전자 색이 늘어난다. 아직 암에 걸리지 않았지만 암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더 빨리 자라고 정상세포를 밀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암의 씨앗에 해당하는 부분을 사전에 막으면 치료 시간을 놓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공석이던 유전체교정연구단 단장에 단독 응모했다는데.

“지난달 해외 석학들 앞에서 면접을 봤다. 오가노이드를 계속 한다고 했다면 능력이 있고 주제도 좋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자이크 유전학에 대해서는 그 점에서 점수를 많이 주는 느낌을 받았다. 모자이크 유전학 같은 분야는 연구단이 보유한 최점단 유전체 교정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제약바이오 산업을 주도하지 못한 이유는.

“미래를 보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훈련을 받은 젊은 과학자들이 적기 때문이다. 또 정부나 기업이나 지나치게 선진국을 추격하는 전략에 집중하는 것도 문제이다. 남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다.”

☞구본경 박사

1977년 생. 포항공대 생명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 최초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오가노이드를 개발한 네덜란드 후브레흐트 연구소에서 2009~2013년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그가 발표한 논문들은 1만 번 이상 다른 논문에 인용될 정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2013년부터 5년 간 영국 케임브리지대 줄기세포연구소에서 그룹 리더를 맡았다. 2017년부터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의 그룹 리더로 일하다가 2021년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부연구단장에 선임됐다. 지난해 글로벌 학술정보업체인 클래리베이트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CR)’에 선정됐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