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무료로 풀면 기회가 더 열린다는데...“대세된 오픈액세스, 한국은 예산이 발목”

이병철 기자 2023. 2.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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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결과 누구나 볼 수 있는 오픈 액세스 추세 확산
미국·유럽, 정부 지원 받은 성과 오픈 액세스 게재 의무화 제도 마련
한국도 2019년 의논 시작했지만, 진전 없어
퍼블릭도메인

미국·한국·독일·영국 등 13개국 과학자 1000여명이 참여한 ‘고급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라이고) 연구단’은 지난 2016년 당시까지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중력파를 최초로 관측하는데 성공했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우주에 초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 중력 에너지가 물결처럼 나타나는 중력파 존재를 예견한지 100년만이다.

21세기 최고의 과학적 성과라고 평가받은 이 관측 결과는 공교롭게도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는 방식(오픈 액세스)로 발표됐고 현재까지 7000회 이상 인용되며 후속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우주 생성 초기에 만들어진 원시 블랙홀이 암흑물질의 후보임을 밝힌 연구, 우주의 팽창 속도를 계산하는 허블 상수의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 우주 탐사를 위한 발광다이오드(LED) 연구들이 이 공개 논문을 통해 시작됐다.

2020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백신개발로 이어진 메신저리보핵산(mRNA) 연구와 환자 치료, 방역 대책에 관한 각국 논문들도 대부분 이런 오픈 액세스 방식으로 공개됐다. 과학계는 오픈 액세스를 통해 여러 전문가들의 연구 성과가 빠르게 전파되지 않았다면 코로나19 극복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 성과를 비용 없이 누구에게나 공유하는 오픈 액세스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주탐사·감염병 분야에서 정보 공유를 통해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부터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발표된 논문에 대해 오픈 액세스 출판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예산 문제로 관련 논의가 멈춰 있는 상황이다.

◇지식 공유 확대 목적도 있지만 부담스러운 구독료도 배경

오픈 액세스는 저자의 비용 부담, 이용자의 무료 접근, 시공간을 초월한 접근성, 저자의 저작권 보유 등 4개 원칙을 바탕으로 논문을 공유하는 새로운 지식 공유 체계를 말한다. 누구나 원하는 논문을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과학정책을 결정하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은 지난달 11일 올해를 ‘오픈사이언스의 해’로 선포하고 연방 연구기관들이 오픈 액세스를 의무화하는 제도를 준비 중이다. 14개 미국 연방 기관의 고위 과학·기술 정보 관리자로 구성된 ‘커머스, 에너지, NASA, 국방 정보 관리자 그룹(CENDI)’은 공공 자금을 지원 받은 연구 성과를 무료로 공개하는 시스템과 연구자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립보건원(NIH)은 자체 운영 중인 오픈 액세스 플랫폼인 ‘펍메드센트럴’을 활용하거나, 연구 기관 자체에서 운영하는 연구비를 활용해 게재료를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유럽연합(EU)도 학술 지원 기관 컨소시엄인 ‘코울리션S’를 통해 2025년까지 ‘플랜S’라는 오픈 액세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정부 차원에서 오픈 액세스 정책에 나선 건 공공 투자를 통해 확보한 지식을 풀어 수월성과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도 있지만 메이저 학술지 출판사의 비싼 구독료 정책도 한몫 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해외 주요 대학들과 연구기관,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주요 학술지와 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보기 위해 적지 않은 구독료를 내고 있다. 학술지 출판사는 논문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약 3000종의 학술지를 보유한 네덜란드 출판사 엘스비어는 전체 학술지를 구독하는 것을 기준으로 연간 구독료가 27억원에 이른다.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2021년 발표한 ‘2020년 대학 도서관 통계 분석 및 교육·연구 성과와의 관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393개의 4년제 대학·전문 대학은 전자 학술지 자료 구독에 약 1235억 원을 쓰고 있다. 구독료 인상률도 매년 3~9%로 매년 논문 구독에 드는 비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오픈액세스 하고 싶어도 게재료 예산이 부담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오픈액세스를 제도화하는 논의가 멈춰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현재 오픈 액세스 출판을 의무화하는 제도에 대한 검토는 하지 않고 있다”며 “구독 형태로 운영하는 국제학술지에 오픈액세스로 논문을 발표하려면 게재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논문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출판사에도 게재료를 지불하면 오픈액세스로 논문을 출판할 수 있는데, 논문 한편의 게재료는 300만~500만원 수준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내 연구자들이 오픈액세스 방식으로 발표하는 논문에 대한 게재료를 모두 계산하면 매년 4700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도해 국내학술지 게재료를 국제학술지보다 훨씬 낮춘 것도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국내에서 발간되는 학술지는 총 5959종,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록된 학술지는 2528종인데 이중 1256종의 학술지가 오픈액세스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 학술지 게재료는 논문 1편당 50만~100만원 수준으로 해외 학술지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해외 오픈액세스 학술지에 게재료를 지원할 경우 자칫 해외 학술지를 우대하는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국내 학술지는 공익적인 목적에서 자발적으로 오픈 액세스로 전환하고, 게재료를 저렴하게 받는 경우가 많다”며 “또 연구 분야에 따라 연구비 규모가 크게 다르다 보니 게재료 부담을 느끼는 연구자와 그렇지 않은 연구자 간의 갈등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과 유럽이 추진하는 오픈사이언스 정책에 따라 2025년까지 국제학술지 출판 업체의 행보를 지켜보고 제도화 의논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학술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연구자들의 오픈액세스 출판이 의무화되면서 논문 출판사의 정책 변화에 따라 간다는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미국은 논문 출판 시장의 최대 30%를 차지할 만큼 출판사 입장에서는 큰 고객”이라며 “2025년까지 학술지의 게재료를 내리거나 대체 플랫폼을 개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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