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兆 투입해서 1300억 회수, 손실율 87%”…'흉년 바라는 정부’ 만드는 양곡법의 역설
3년 보관·가공 비용만 57억원…폐기하는 게 비용 적어
국제사회 공여도 현물 제공 제한돼
“양곡관리법, ‘흉작 비는 정부’ 만들 것…농업 발전 저해”

정부가 과잉생산된 쌀을 시장에서 격리한 후 방출을 통해 회수하는 비용이 13%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말 과잉 생산된 쌀 45만톤을 시장 격리하는데 1조원을 투입했는데, 격리한 쌀을 방출해 회수할 수 있는 기대금액이 1300억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쌀값 안정을 위해 혈세 8700억원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것이다.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입법되면 재정 누수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격리미 3년 묵은 뒤, 주정용으로 kg당 364원에 팔려
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가 과잉생산된 쌀 1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267억원에 이른다. ▲쌀 매입비용 208억원 ▲입고료 등 2억원 ▲3년 보관비용 45억원 ▲방출 시 가공비용 12억원 등이 소요된다.
267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시장에서 격리 시킨 쌀을 방출해서 얻는 수익은 36억원에 불과하다. 시장에서 격리한 쌀을 폐기하지 않고 전량 방출하고 있음에도 회수율이 이렇게 낮은 것은 장기 보관한 쌀을 대부분 주정용으로 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격리한 비축미는 통상적으로 1년에 10%가량 감가된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쌀은 너무 묵어 식용으로 쓰지 못하고, 주정용으로 시중에 풀린다. 주정용으로 팔리는 쌀(현미)의 가격은 1kg당 364원, 시중에 거래되는 현미 가격이 10kg에 2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방출 현미의 시세는 일반 현미 가격의 17% 수준이다.
여기에 해마다 쌀 1만톤을 보관하는 비용으로 15억원이 소요된다. 쌀 1만톤을 방출할 때 가공·출고·수송 비용도 12억원이 들어간다. 3년 동안 보관했다 가공하는 비용만 57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판매수입 36억원보다 보관·가공 비용이 더 드는 구조다. ‘보관하지 않고 바로 폐기하는 게 비용 면에서는 오히려 이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흉작 등으로 쌀이 부족해 시장에서 격리한 쌀을 방출했다면 수익성이 좀 더 나았을 것”이라면서 “수요량보다 생산량이 많은 과잉 생산 구조가 고착화돼 대부분 주정용으로만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내에 남는 쌀을 국제기구 등에 공여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이 역시도 재정이 소요된다. 현재 국제기구에 대한 양곡 공여는 공여국이 현금을 제공하면, 국제기구가 공여국의 양곡을 구입한 후 수혜국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제공여를 1만톤 확대하는 데 통상 100억원 정도가 들어간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식량기구(WFP)에 한국산 쌀 5만톤을 공여하는 목적으로 50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공여량을 10만톤으로 늘리려면 지원금을 500억원 증액해야 한다.

◇ ‘흉작 비는 정부’ 만드는 양곡관리법…타 품목 형평성도 논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9월 발표한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현재 국회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난해 24만8000톤 수준이었던 쌀 초과생산량이 2030년 64만1000톤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기간 쌀 생산량은 385만7000톤으로 386만톤으로 소폭 증가하지만, 국민 쌀 소비량은 1인당 54.5kg에서 45.5kg으로 대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게 농경연의 전망이다. 식문화 변화로 쌀 수요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정부의 의무 매입 때문에 농가로선 쌀 생산을 줄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종인 농경연 연구위원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벼 재배면적 감소폭 축소와 쌀 소비 감소폭 확대 등으로 과잉공급 규모가 점차 증대돼 격리에 소요되는 재정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쌀 값 안정과 재정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선 결국 감산을 통한 수급 조절로 가야한다는 게 정부와 농업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한 농업 전문가는 “시장 격리를 의무화할 경우, 작황이 좋을수록 사들여야 하는 쌀의 양이 많아지는 구조가 돼 정부가 ‘흉작’을 바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남는 쌀을 모두 사야하는 구조가 되면 정부가 쌀 생산성 증대 및 품종 개량 사업에 투자할 이유가 사라진다. 농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논의되는 양곡관리법에 ‘감산 유도’ 및 ‘재정지출 제한’ 등 재정 누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김종인 연구위원은 “시장 격리 시 재정낭비를 막기 위해 과잉 생산된 것에 대한 생산자의 책임을 부여하는 방안도 과거에 논의됐지만, 이번 법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시장격리 매입 시 비축미보다 싼 가격에 매입을 한다거나, 쌀 시장 격리에 지출할 수 있는 재정의 한계선을 정하는 등 생산자에도 책임감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농·축·수산물 중 쌀에만 의무 격리제를 도입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한우 가격이 소값 파동이 발생했던 2013년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급락한 상황”이라면서 “농축산물 특성 상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데, 쌀만 가격 안정을 위해 의무 매입을 시행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 쌀 시장 격리에 농식품부의 재정을 모두 소진하게 돼 다른 품목에 대해선 정부가 수급 조절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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