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게임업계 첫 정년퇴직자…"60대는 베테랑, 일 놓기엔 젊어요"

박상휘 기자 박혜연 기자 이정후 기자 2023. 2.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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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이 온다] ②넥슨 던&파 서버관리했던 61세 백영진씨
은퇴 후 암호화폐 업계 재취업…"나이가 도전을 막을 순 없어"

[편집자주] 정부가 정년연장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수면 위로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국민연금 개혁과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고려할 때 정년연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라는 인식에 따른 결과일 것입니다. 다만, 정년연장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합니다. 특히 세대 간 갈등과 임금체계 개편, 노사 간 합의 등은 이해관계가 첨예해 합의가 요원합니다. 뉴스1은 사회적 합의를 해결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4편의 기획물에 담았습니다.

게임업계 최초 정년 퇴직자 백영진 씨가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코빗 연구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 씨는 게임업체 네오플에서 정년퇴직한 후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에 재취업했다. 2023.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박상휘 박혜연 이정후 기자 = 지난 2021년 12월31일, 게임 업계 최초의 정년퇴직자가 넥슨 자회사 네오플에서 나왔다. 주인공은 넥슨의 PC게임 '던전앤파이터' 서버 관리를 맡았던 백영진(61)씨. 백씨의 정년퇴직 소식은 이직이 잦고 퇴사가 빈번한 IT 업계의 특성상 이례적인 일로 업계 전반에 화제가 됐다.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국내 IT 산업에서 첫 정년퇴직자인 만큼 그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는 신생 산업이 성숙기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준 산 증인이자 앞으로 IT 업계에서도 수많은 '제2의 백영진'이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재직자들에게 심어줬다.

업계 최초 정년퇴직이라는 영광을 맞이한 지 1년. 백씨는 정년퇴직 후 암호화폐 기업 '코빗'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인생 제2막'을 펼치고 있다. 게임 업계를 떠나 블록체인 업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보내고 있는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에게 정년이란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기 위해 직접 만나봤다.

2021년 12월 네오플 본사에서 열린 백영진씨 은퇴식(백영진씨 제공)

다음은 백영진씨와의 일문일답.

-지난해 1월, 게임업계 첫 정년퇴직자로 주목받으셨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는데 퇴직 후 어떻게 지내셨는지. ▶저는 참 운이 좋게도 게임 업계에서 정년퇴직까지 하고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에 입사해 프로그래머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넥슨 계열사인 코빗에서 저를 불러주셔서 흔쾌히 입사하겠다고 한 것이 지난해 이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일하게 된 팀원분들도 뛰어나신 분들이 많고 잘 배려해주셔서 적응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 그 일이 작년 한 해 동안 제가 해온 일이었습니다.

-게임업계 은퇴 후 암호화폐 업계로 재취업하셨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인데 다시 현업으로 도전하신 계기는? ▶게임 서버 프로그래머 일을 20여년 동안 해오면서 '던전앤파이터'라는 최고의 게임 라이브 서비스를 경험했고 성공의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게임 업계 은퇴 후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던 도중 코빗에서 입사 제안을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년퇴직 제도상 만 60세는 일을 그만두고 쉬기에 너무 이른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데 정든 회사, 동료들과 헤어져야 하니까 퇴직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아쉽죠. 무엇보다 젊은 생각, 창의적인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팀원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재취업을 하면서 새로 배우는 내용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배움에 있어서 나이가 걸림돌이 된다고 느끼지는 않으셨는지. ▶게임이 아닌 금융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겁도 났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요. 실제로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노력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성취감도 느끼고 있고요.

게임업계 최초 정년 퇴직자 백영진 씨가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코빗 연구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 씨는 게임업체 네오플에서 정년퇴직한 후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에 재취업했다. 2023.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 정년 맞은 60대는 '베테랑'…은퇴하기에는 이르다

나날이 기술이 발전하는 IT 업계이지만 그가 서비스 초기부터 기반을 닦아 놓은 '던전앤파이터'의 서버는 여전히 기초를 이루고 있다. 수십만명의 동시 접속도 견뎌낼 수 있는 코드를 만들어 본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업계 '베테랑'인 셈이다.

코빗이 정년퇴직한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한 이유도 그의 풍부한 경험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서버 안정성이 중요한 암호화폐 거래소에 그의 노하우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코빗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서버가 다운되면 안 되는데, 대규모 서버를 경험해보신 백영진님의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받고자 일자리 제안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IT 산업은 '지식산업'입니다.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노하우와 전문성을 갖춘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육체적인 조건보다는 지식을 바탕으로 일을 하는 분야입니다. 육체노동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나이가 들면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들 수 있겠지만 IT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컴퓨터 앞에서 문서를 작성하거나 코드를 다루는데 굳이 나이와 상관이 있을까요?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노력과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경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년을 앞둔 개발자들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제가 정년퇴직한 시점에도 네오플에는 50대 개발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50대가 IT 업계에 종사하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현업에 남아계신 50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저처럼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오신 분, 두 번째는 팀장을 거쳐 실장 등 개발보다는 리딩하는 쪽을 선택해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분들 모두 변화하는 트렌드에 잘 적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 노하우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 팀 작업을 통해 팀원들을 리딩하고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점이 정년을 앞둔 50대 개발자의 강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IT 업계에서 앞으로 '제2의 백영진'처럼 정년퇴직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업계 첫 정년퇴직자로서 정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사실 만 60세에 정년퇴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 60세에 회사를 나온다면 그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은 어떻게 하나요? 요즘은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60세가 되더라도 자녀들은 대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인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돈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정년 나이가 만 60세라서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2023년 기준 63세)까지 기다려야 안정적인 소득이 생깁니다. 선진국들은 정년을 연장하거나 없앤다고 하는데 아직 만 60세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게임업계 최초 정년 퇴직자 백영진 씨가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코빗 연구소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 씨는 게임업체 네오플에서 정년퇴직한 후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에 재취업했다. 2023.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주변 지인들도 정년퇴직을 시작했을 것 같다. 비슷한 연령대에서는 정년 연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쎄요. 모두 다른 업계에 있는 분들이라서요. 그래도 모두 정년 연장을 원할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죠. 돈이 필요한 시점에 아무 할 일 없이 그냥 집에만 있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한 달, 두 달 쉬면 몸이 근질거려서 못 견디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장기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도 힘든 일이죠. 적당한 일은 삶에 굉장한 활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적당한 정년 나이는 몇 세라고 생각하시는지?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들은 정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정년을 없애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능력은 회사와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정년은 양측이 협의해서 정하는 것이지 '60세, 65세 등 딱 잘라서 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능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임금피크제와 같은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이를 정해야 한다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와 맞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혼 연령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결혼 뒤 아이를 갖지 않는 초저출산 시대라고 하죠. IT 업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산업에서 노동 인구의 감소가 불가피해질 겁니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정년을 맞는 분들의 건강은 양호한 편입니다.

저는 정년퇴직을 해본 사람으로서 건강이 허락한다면 근무형태가 어떻게 되든 노사가 협의해 아까운 인력 낭비를 줄여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년 연장도 필수적으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이제 곧 산업계는 노동인구 감소를 절감하게 될 것이고 정년으로 내보낸 인력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올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 돈벌이를 좇는다고 합니다. 정년연장과 함께 그때까지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부터 제대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혜연·이정후 기자)

lee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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